정부가 주택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을 공공에서 직접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기존 공공재개발이나 공공재건축보다 한층 더 나간 개념으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해 참여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대신 개발이익을 공유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해 서울의 대규모 재건축 단지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4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에서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 모델은 주민이 희망할 경우 정비사업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의 공기업이 직접 시행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이 토지 소유권을 확보해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조합이 운영하고 공공이 참여하는 기존 공공정비사업과는 차별성을 띤다.
정부는 공기업 주도로 사업과 분양 계획을 수립하고 통합심의를 신설해 신속한 인허가를 지원키로 했다. 정비구역 지정부터 이주까지 13년 이상 소요되는 민간정비사업을 공공이 직접 시행해 5년 이내로 단축한다는 설명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 5년간(2021~2025년) 서울 9만3000호, 경기‧인천 2만1000호, 지방광역시 2만2000호 등 총 13만600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신규 택지 개발 26만3000호, 역세권 공공주택 12만3000호, 준공업지역 공공주택 1만2000호, 저층 주거지 고밀 개발 6만1000호, 소규모 재개발 11만 호, 도시재생사업 3만 호, 비주택 리모델링 4만1000호, 민간 신축 주택 매입 6만 호를 더해 총 83만6000호를 확보키로 했다.
사업에 참여하면 파격적인 혜택이 제공된다. 대신 개발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가장 큰 인센티브로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 용적률은 1단계 종상향하거나 법적상한의 120%까지 높일 수 있다.
입지여건상 이를 적용하기 어려우면 기존 가구수의 1.5배(재개발은 1.3배) 이상을 보장하고, 필요시 층수제한도 완화한다. 기부채납은 주택법령에 따라 재건축 9%, 재개발 15% 내로 규정했다.
조합원에게는 기존 정비사업 대비 10~30%포인트(p)의 추가 수익을 보장하는 선에서 분양가를 산정한다. 사업의 부담 비용은 관리처분이 아닌 현물선납 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양도소득세가 면제된다.
소유권 이전으로 모든 사업 리스크를 공기업이 부담하게 된다. 기존 공공재개발이나 공공재건축에 참여한 사업장도 전환 가능하다. 투기수요 유입 방지를 위해 공기업이 단독시행 신청 시 해당 구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다.
주택은 공공분양(조합원 분양포함) 70~80%, 공공임대·공공자가 20~30% 비율로 공급된다. 용적률 상향 시 임대주택을 기부채납하는 방식을 적용하지 않고, 재개발 10~15%, 재건축 5~10% 범위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기존 조합원의 추가 수익률을 보장하고 남는 수익은 세입자 지원과 생활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에 쓰인다. 부담 능력이 없는 실거주자, 전세금 반환 부담이 있는 집주인, 월세 수입에 의존하는 고령자 등이 지원 대상이다.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은 저마다 득실을 따지는 셈법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정비가 시급한 재개발 지구들의 경우 득보다 실이 커 참여가 활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주요 재건축 단지는 임대주택 공급과 개발이익 공유가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앞서 진행된 공공재개발과 공공재건축에서도 참여 실적은 극명한 온도차를 보인 바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는 공공재건축 사전컨설팅을 신청했다가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철회하기도 했다.
잠실주공5단지 주민들은 “이번 대책을 보니 민간재건축은 절대 안 해주겠다는 의미로 읽힌다”며 “1대 1 민간재건축을 위해 서울시장 선거 이후의 상황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반발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공정비사업의 인센티브가 늘어나며 기존 정비사업지들의 참여와 사업성 개선에 일부 물고가 트일 것”이라면서도 “조합의 자율성과 사업의 고급화를 중요시하는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참여율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