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별세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생전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을 두고 갈등하며 이른바 ‘시숙부의 난’을 벌였다.
2003년 8월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대북 불법 송금 특검 진행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부터 양측의 경영권 다툼이 불거졌다.
정 명예회장은 애초 외국계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을 우려, 현대그룹의 경영권 방어를 명분으로 한국프랜지와 금강종합건설, 울산화학, 현대백화점 등 범현대가 9곳과 협의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6.2%를 사들였다.
정 명예회장은 현정은 회장의 상속 절차가 본격화하면서 입장을 바꿨다. 정 명예회장은 현 회장이 2003년 10월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취임을 강행하자 사모펀드와 뮤추얼펀드를 이용해 비밀리에 지분 매집에 나섰다. 그해 11월에는 현대그룹 인수를 공식 선언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그룹 섭정 의사를 밝힌 정 명예회장이 당시 현대엘리베이터 대주주인 현 회장의 모친 김문희 여사와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현 회장은 국민주 1000만 주 공모를 통한 유상증자 방침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법원이 KCC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며 무산됐으나 양측의 갈등은 지속했다.
정 명예회장은 2003년 12월 ‘성명서’를 내고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며 현대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김문희 씨가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고 현대그룹이 계속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살아계셨더라도 본인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셨으리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4년 2월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KCC가 주식 대량 보유ㆍ변동 보고 의무(5% 규정)를 위반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했다고 보고 사모펀드(12.91%)와 3개 뮤추얼펀드(7.87%)를 통해 매입한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20.78%(148만1천855주)를 모두 처분하도록 명령했다. 또 지분 매입 과정에서 5% 규정을 위반한 정 명예회장과 KCC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에도 KCC 측과 현 회장은 수개월에 걸쳐 갈등을 이어갔다. 결국, 2004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 측이 완승하면서 8개월 만에 경영권 분쟁이 종료됐다.
당시 정 명예회장을 향해 ‘상중에 조카 그룹을 빼앗으려 한다’라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후 일각에서는 정씨 일가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