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만난 이종락 목사는 최근 양모에게 학대를 받아 숨진 것으로 알려진 '정인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목사는 정인 양이 출생신고가 된, 친모가 지어준 이름이 있는 영아인 상태로 위탁모에게 맡겨진 사실에 주목하며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라고 짐작했다.
"출생신고를 하고 이름을 지어줬다는 건, 사실은 키우고 싶었지만 형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는 거죠. 현실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미혼모가 아이를 홀로 키우기 쉽지 않은 나라잖아요.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시설에 맡기는 엄마들의 마음은 10대건 20대건 30대건 똑같습니다. 미안한 마음과 언젠가 다시 찾을 테니 건강하라는 바람이 있는 거죠."
이 목사는 2009년부터 아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 부모들의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운영해 오고 있다. 이 목사는 9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후견인을 맡는 아이까지 더하면 16명의 아이를 받아들인 '입양 아버지'다.
지금까지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의 수만 1830명에 달한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미혼 부모의 손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정인이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첫 발걸음을 내딛는 곳이다.
이 목사는 출생신고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생신고는 버려진 아이가 입양기관에 맡겨져 위탁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아기를 맡기고 가는 엄마, 아빠들을 붙잡고 설득합니다. 제발 아이를 위해 출생신고를 해달라고요. 현재 병원이 아닌 곳에서 분만한 엄마들의 경우 출생신고가 더욱 어렵습니다. 예전엔 구청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젠 법원에 가서 검사하고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출생신고를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이죠. 신원이 밝혀질까 봐 두려우니까요. 그렇게 버려지는 아기들이 많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부모가 해야 하는, 당연한 가족관계등록 절차로 보이는 출생신고도 친부모의 손을 떠난 아기들에겐 꿈 같은 이야기였다.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이들은 위탁모를 통한 입양처로 보내질 수 없다. 대신 보육시설로 보내진다. 2012년 입양특례법의 영향으로 생부모의 입양신청과 양부모 자격 조건을 강화하면서 출생신고가 입양의 조건으로 의무화되면서다. 보육원에 간 이후엔 6개월 이후 출생신고가 이뤄진다. 친부모가 키우지 못하는 아이에게 놓인 선택지는 이 두 가지뿐이다.
"입양 특례법은 출생신고를 의무로 하기 때문에 입양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게 된 겁니다. 이 법 때문에 많은 아이가 죽고 수많은 미혼모가 삶을 포기했습니다. 법이 이러니 모두를 지키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처음 운영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기를 맡기는 부모를 만날 때면 출생신고를 꼭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이라고 했다. 생명을 살리려면 '선지원 후행정'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실명 출산이 어려운 산모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아이를 우선적으로 낳을 수 있게 돕고, 이후 국가가 영아를 보호하고 출생신고와 후견·입양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발표한 비밀(익명) 출산제 도입을 목적으로 하는 이른바 '사랑출산법'과 통하는 부분이다.
"부모가 도저히 아기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일 수도 있잖아요. 실명으로 출산하기 어려운 산모가 신분 노출 없이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먼저 아닐까요? 일단 살리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