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의 의심 신고에도 양부모의 학대로 16개월의 영아가 숨진 ‘정인이 사건’은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의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냈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13일 이투데이와의 비대면 인터뷰에서 “아동학대 사건 대응은 인공지능이 하는 게 아니다”며 “사람이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에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인 양의 학대 의심 신고는 지난해 5월 처음 접수됐다. 어린이집 원장이 정인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아이 허벅지에 멍이 든 것을 본 소아과 의사가 A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A 기관은 ‘방임’으로 판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내사종결했다. 이후 A 기관은 여전히 방임으로 판단할 측면이 있다고 보고 정인 양 가정을 사례 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현재 아동학대 현장 대응에는 행정안전부 산하의 경찰과 보건복지부 산하의 아동보호전문기관, 지자체 소속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아동학대 대응 업무가 3개 기관에 분산되면서 효율성도 떨어지고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좋은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인 양 사건이 발생한 이후인 이달 5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권덕철 복지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과 ‘아동학대 대응 긴급 관계장 회의’를 열었다.
김 변호사는 “국무총리와 관계기관장 회의 결과를 보면 각 주체의 특성과 업무 분담에 대해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각 기관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모르고 ‘옥상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아동학대 사건은 전문성이 필요한 일인데 각 기관에 조사와 사건 처리, 피해자 지원 등 모든 업무를 맡기는 패턴이 10년 째 반복되니까 현장은 포기 상태”라며 “‘나 있을 때만 사건 터지지 마라’,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까 조용히 넘어가자’는 식의 참담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동학대 사건 담당 기관들이 전문성을 키울 시간도 없이 업무를 몰아주고 있다”며 “아동보호기관에서 하던 아동학대 사건 조사를 전담 공무원에게 하라는데 조사 주체가 여러 곳이 되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응 시스템을 갈아 엎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자는 이야기”라며 “각 주체마다 장점이 있으니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아동학대 대응 기관의 전문성을 키워주고 법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 그 부분을 덜어줘야 한다”면서도 “‘이 일만 하는데 대신 잘해야 해’, ‘책임지고 하는 거니까 못하면 각오해’라는 마음가짐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아동학대 사건은 ‘피해자다움’ 조차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의 불균형이 극심한 사건”이라며 “인간의 선의에 맡겨서 ‘잘 키우겠지’라고 생각하기 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아동을 학대하면 철퇴를 맞는다’는 생각으로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