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한국타이어 지주사)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재판을 청구한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 나눔재단 이사장이 직접 법원 조사에 출석하면서다.
법조계와 타이어 업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은 25일 오후 3시 조 이사장을 법원에 불러 면접조사 기일을 연다. 면접조사는 사건 재판부(가사20단독)가 가사조사를 지시함에 따라 열리게 됐다. 가사조사는 가정법원 소속 조사관이 성년후견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청구인 등을 조사하는 절차다.
미국에 머무르던 조 이사장은 이날 법원에 직접 출석하기 위해 수주 전 국내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발 입국자에게 요구되는 2주간의 자가격리 절차도 마쳤다.
법원 조사관은 이날 조사에서 조 이사장에게 청구 사유와 가족과 관련한 전반적인 사안을 물을 전망이다. 청구인에 대한 첫 조사인 만큼, 가족과의 옛 기억 등 내밀한 내용까지도 질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 차남 조현범 사장, 차녀 조희원 씨 등 나머지 형제들에 대한 조사 계획과 기일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간 금융정보와 의료기록 등을 파악하는 등 조사 절차를 차례로 밟아왔다. 사건 당사자들의 주장과는 별개로 사실관계를 뒷받침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강남구청과 증권사 등에는 부동산 정보와 금융거래 정보를 요구했고, 서울대학교병원에도 문서제출을 요청했다. 특히, 병원은 CD를 포함한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이는 조양래 회장의 진료기록과 관련한 서류로 추정된다. 성년 후견 재판에서는 조 회장의 건강 상태 진단이 핵심적인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가사조사는 6개월 이상이 걸리는데,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겹치며 심판기일이 올해 안에 잡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성년후견 재판은 대법원 판결까지 1년 6개월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7월 30일 조 회장의 큰딸인 조 이사장이 법원에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며 시작됐다. 한정후견은 질병, 장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주는 성년후견제도의 하나다.
조 이사장은 아버지가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모두 넘겨준 점을 언급하며 “조 회장이 건강한 상태로 자발적 의사 결정이 가능한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청구 이유를 밝혔다.
앞서 조양래 회장은 6월 26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둘째 아들인 조현범 사장에게 자신이 보유한 그룹 지분 23.59%를 모두 넘겼다. 합산 지분 42.9%를 갖게 된 조 사장은 최대주주에 올랐고, 업계에서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뤄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조현식 부회장도 8월 25일 입장문을 통해 “건강상태에 대한 논란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주와 임직원 등의 이익을 위해서도 법적인 절차 내에서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히며 성년후견 심판 참여를 공식화했다.
10월 5일에는 법원에 참가인 자격으로 의견서도 제출했다. 참가인은 청구인과 같은 자격을 가지는데, 사실상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조양래 회장은 조 이사장이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한 다음 날 입장문을 내고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간 경영을 맡겨왔고, 그간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라며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 이전부터 최대주주로 점찍어 두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현재 조 사장을 제외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조희경 이사장(0.83%) △조현식 부회장(19.32%) △차녀 조희원 씨(10.82%) 등 30.97%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