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시장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쓰던 낡은 물건을 값싸게 취급하는 곳으로 인식돼던 중고 시장이 불황 속 '실속형 소비'가 강조되는 추세 속에 합리적이면서도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신(新)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C2C(소비자간 거래) 시장 특성상 정확한 규모를 확인할 수 없지만 유통업계는 국내 중고 시장 규모(중고차 시장 제외)가 2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중고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국내 중고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곳은 당근마켓이다. '당신 근처의 마켓' 당근마켓을 통해 사람들은 거주지 반경 6km 안에 있는 사람들과 중고 제품을 거래한다.
택배보다 직접 만나서 물건을 사고파는 경우가 많다. '동네 주민'이라는 신뢰감을 바탕으로 기존 중고 플랫폼과 비교해 거래 위험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근마켓은 전국 6000여 개 이상 지역에서 동네 주민들을 연결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당근마켓에 따르면 지난달(10월) 월간 순 이용자수(MAU)는 1200만 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올해 1월(480만 명)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당근마켓의 성장은 중고 시장의 신뢰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중고 시장은 2003년 네이버 카페에서 시작된 '중고나라'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플랫폼의 경우 사기 등 피해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중고 시장에 부정적 이미지를 더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반면 폭발적인 성장세에도 대기업 광고를 받지 않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역 광고만을 집행하는 등 '지역 커뮤니티'로서의 경영 방침을 분명히 한 당근마켓은 중고 시장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당근마켓은 최근 '선물하기' 서비스 도입으로 고객 편의성 제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커피, 음료, 빵, 아이스크림 등 간식거리와 편의점 상품권, 케이크 등 1300여 종의 쿠폰을 거래 상대에게 보낼 수 있다. 쿠폰은 당근 채팅에서 모바일 상품권 형태로 전달된다.
'번개장터'도 중고 시장을 이끄는 주자 중 하나다. 2011년 서비스를 런칭한 번개장터는 한정판 스니커즈부터 캠핑용품, 피규어 등 각종 취미 용품과 빈티지 아이템, 아이돌 굿즈 등 개인의 '취미'와 '취향'이 드러나는 다양한 물품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취향 기반' 플랫폼이다.
당근마켓에 동네 기반 서비스라면 전국구 단위로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이 번개장터의 특징이다. 따라서 희소성 있는 물품이라도 구하기 쉽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자체 에스크로 서비스(구매자의 결제대금을 제삼자에게 예치하다가 배송 완료 후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거래안전장치)인 '번개페이'로 거래 안전성을 높인 점도 성장에 주효했다.
제품 수령 전까지 구매자의 돈을 번개장터가 보관하고, 제품 수령이 확인되면 판매자에게 입금해 사고 발생을 막는다. 번개페이 거래액은 2018년 출시 이후 매월 약 26% 늘었고, 올해 3분기 기준 거래액은 전년 대비 78% 증가했다.
'취향 기반', '전국구 플랫폼', '안전한 거래'라는 컨셉으로 번개장터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모바일 앱 분석 사이트 앱애니에 따르면 구글 플레이스토어 쇼핑 카테고리 인기 차트에서 번개장터는 최근 한달(10월 10일~11월 9일)간 1위를 차지했다.
쿠팡은 2위를 기록했고 무신사와 올리브영이 각각 3, 4위로 뒤를 이었다. 번개장터의 10월 신규 가입자수는 전년 동월 대비 86.3%로 대폭 증가했다.
연간 거래액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17년 6500억 원을 기록했던 거래액은 이듬해 8000억 원, 지난해 1조 원을 기록했다. 올해 연간 거래액은 1조3000억 원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유통 시장을 흔드는 '메기' 역할을 하는 쿠팡이 중고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쿠팡 측은 중고 시장 진출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