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계속 늘어나면서 정부 당국과 의료계가 접종 여부를 둘러싸고 혼선을 빚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22일 질병관리청과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독감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례는 이날 오후 4시 기준 25건에 달한다. 16일 인천을 시작으로 20일 고창, 대전, 목포에 이어 21일 제주, 대구, 광명, 고양, 통영, 춘천 등 전국 곳곳에서 사망자가 속출했고, 서울 영등포구와 강남구에서도 첫 사망 사례가 나왔다.
질병청을 비롯한 정부 당국은 독감백신 접종과 사망 간 직접적 연관성이 낮기 때문에 아직은 접종을 중단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백신의 안전성이 규명될 때까지 접종을 중단해야 한다’라는 지적이 나오자 “현재까지 사망자 보고가 늘고 있긴 하지만, 예방접종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직접적 연관성은 낮다는 것이 피해조사반의 의견”이라며 “접종을 아직은 중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저희와 전문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정 청장은 또 며칠간 접종을 중단하면 문제가 되느냐는 질문에는 “예방접종의 적정 시기가 있기 때문에 접종을 일정 기간 중단하기는 어렵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독감백신 접종 사업의 일시 중단을 촉구했다.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시행되는 독감백신 접종 사업을 일주일간 잠정 유보하고, 안전성을 우선 입증할 것을 권고한다”라며 “23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간 독감백신 관련 모든 국가예방접종과 일반예방접종을 중단해달라”라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배석한 조민호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독감백신 접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하루에도 몇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상황인 만큼 원인을 규명하기 전까지 최소 기간 접종을 유보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백신의 안전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백신의 제조 공정, 시설, 유통, 관리 전반의 총괄 점검을 실시하고, 사망자의 신속한 부검과 병력 조사 등을 통해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을 의학적으로 검증해 예방접종의 안전성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질병청과 사전 협의 대신 긴급 기자회견을 우선 열고 접종사업 유보를 촉구한 만큼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13만 회원이 일선에서 접종사업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 회장은 “의협 13만 회원들에게 일주일간 독감백신 접종을 잠정 유보할 것을 권고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있다”라며 “회원들 역시 정부가 백신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단정적 표현을 쓰고 있고, 유통이나 보관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해 의료기관이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사고가 발생한 발생한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만큼 공문에 따라 실질적으로 내일부터 접종이 이뤄지는 사례는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의협은 이미 독감예방 접종을 받은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 안심해도 좋고, 신체의 불편을 초래하는 특이증상이 발생하면 인근 의료기관을 즉시 방문해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접종 후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 아무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접종 후 신체에 불편한 증상이 생기면 미루지 말고 인근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아야 한다. 대표적인 부작용인 아나필라시스는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률 10%에 달할 만큼 치명적이지만, 빨리 발견하면 사망률이 낮고 치료 또한 가능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