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산층 공공임대주택ㆍ표준임대료 꺼낼까
주택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시행 후 서울 전세시장이 양분되고 있다.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이라도 전세 계약을 갱신했는지 새로 맺었는지에 따라 전셋값이 수억 원까지 차이 난다. 세입자 보호라는 본래 취지가 길어야 4년짜리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3가 두산아파트 전용면적 84㎡형 고층에 전세 살던 A씨는 지난달 26일 보증금 3억7800만 원에 전세계약을 갱신했다. 2년 전 전셋값 3억6000만 원에서 5%(1800만 원)를 올랐다. 집주인이 A씨에게 증액을 요구할 수 있는 상한액이다.
시세와 비교하면 A씨는 2억 원 가까이 싼값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이 아파트 전용 84㎡형 저층부는 지난달 8일 A씨 전셋값보다 1억7200만 원 비싼 5억5000만 원에 신규 전세계약을 맺었다. 일반적으로 저층부는 고층부보다 전셋값이 저렴하지만 신규ㆍ갱신계약 여부가 시장 통념까지 뒤집었다. 현재 두산아파트 전용 84㎡형 전셋값은 5억7000만 원을 호가한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지난달 이 아파트 전용 84㎡형에선 전세계약이 세 건 체결됐다. 각각 보증금 8억9250만 원, 11억 원, 12억 원에 계약이 성사됐다.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인데도 전세가격이 3억 원 넘게 차이난다. 이 가운데 8억9250만 원짜리 전셋집은 2년 전 8억5000만 원에 그 집에 들어왔던 세입자가 5%를 증액해 전세계약을 갱신했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의 전언이다.
이처럼 임대차2법 시행 후로 전세시장엔 '이중 가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2일까지 신고된 9월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 중 한 아파트에서 같은 평형이 두 건 이상 전세가 나간 사례를 분석한 결과 최저가와 최고가 격차가 평균 7215만 원에 달했다.
전셋값이 오르고 물건이 희소해지면 기존 세입자 가운데 계약 갱신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그만큼 전셋집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재계약 기간이 끝나는 2년 후엔 다시 '전세 난민'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는 "임대료를 규제하면 제약당한 임대료를 정상화하기 위해 신규 계약에선 임대료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상당수 전세 물량이 이번에 연장되는데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매물도 적고 임대차법을 피해 과도하게 전셋값을 올린 상황을 접하게 된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12일 기재부 고위 간부들에게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월세시장에 대한 물량·가격 등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 시 추가 대응책을 강구하라"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표준임대료 제도를 도입해 신규 계약까지 규제를 확대하면 이중가격 현상을 막을 수는 있다"면서도 "그렇게 되면 신축 주택은 임대시장에 거의 나오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호중 국회의원은 지방자치단체가 표준임대료를 책정하도록 하는 주거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 의원 등은 표준임대료를 민간주택 전ㆍ월세 산정 근거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지만 학계에선 정확ㆍ공정한 임대료 산정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주거안정연구센터장은 "이중가격 현상은 민간 임대시장이 임대인(집주인) 우위라는 걸 보여준다"며 "공공에서 임대주택이나 지분적립형 주택(분양 시점에선 입주예정자에게 주택 지분 일부만 이전하고 거주 기간에 따라 지분을 추가 매입할 수 있는 주택)을 통해 세입자에게 주거 사다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부총리도 기재부에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 방안도 조속히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