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연평도 떠돌 혼령이라도 구해오라

입력 2020-09-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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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정치경제부 부장

1998년 상영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는 우리에게 국가의 도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 초반 미국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장군은 한 명의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며 여덟 명의 특공대원을 적진 한가운데 침투시킨다. 여기서 “왜 여덟 명이 한 명을 구하러 가야 하죠”라는 병사들의 질문에 마셜 장군은 “2차 세계대전에 4형제가 다 참전해 그중 셋이 전사해 마지막 남은 아들을 구해 어머니 품에 돌려주는 것이 국가의 도리”라고 설명한다. 결국, 이들 특공대는 라이언 일병 소재를 파악해 그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미국은 이 영화처럼 한 명의 자국민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보호하는 것을 제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역사가 짧은 미국으로서는 자국민 보호를 국가의 제1 의무로 삼으면서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전 세계 국가들은 미국은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병력과 비용을 투자해 지구 끝까지 찾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14년 8월 7일 밤(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두 개의 임무를 승인했다. 하나는 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한적인 공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간 지역에 고립돼 식량 부족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이라크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구호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이 위험에 처하면 주저 없이 행동을 취하는 것이 최고 책임자로서의 내 임무이자 책임이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바마 전 대통령은 첩보보고와 회의소집, 고뇌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하루를 보내며 대통령으로 해야 할 역할과 의무, 이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했을 것이다.

연평도 실종 해수부 공무원 이모 씨 북한 피격 사건을 보면서 미국의 이런 조치를 떠올리게 된 것은 대한민국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냐고 묻기 위해서다. 미국처럼 북한에 공습하자는 말은 아니다.

실종 첩보를 접한 군은 지켜봤고, 대통령은 잠자리에 들었다.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는(북한은 부인했다) 보고를 받고도 군은 끊어진 핫라인만 쳐다봤고 대통령은 아카펠라 공연장을 찾았다.

끔찍한 시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군 장성 진급 신고식과 국군의 날 기념식으로 군을 격려했다. 웃으며 치하하는 문 대통령도, 감격스러운 얼굴로 충성을 외친 장군들도 국민이 총을 맞고 숨진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국민이 걱정할까 애써 태연한 척했다고 믿고 싶다.

국방부가 확인되지도 않은 월북 기도를 꼭 브리핑에서 설명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월북 기도에 대해선 북한 통지문이나 유족, 동료 공무원들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말처럼 월북 기도가 사실이더라도 월북 기도를 한 우리 국민의 목숨은 국가가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되레 실종 공무원을 북 해상에서 발견하고 피격당할 때까지 ‘6시간 10분’ 동안 국방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사고로 누군가를 잃은 아픈 기억이 많다. 설령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많지 않았다 한들, 국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실감을 줬다.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우리 국민을 구할 방법도 제한돼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구하려 했다면 국민은 이처럼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의 정보·지시 전달체계가 더 신속해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빨리 전달돼 국방부에 명확한 지시가 있었으면 이 공무원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북한이 전후 사정을 소상히 설명해 일부 의문점들은 해소됐다. 하지만 되살아난 국민 모두의 먹먹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는 진실 규명과 함께 지금도 연평도 해변을 떠돌 이 씨의 영혼이라도 구해 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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