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복비가 기가 막혀

입력 2020-09-2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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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부국장 겸 부동산부장

복비(福費). 부동산을 소개하고 거래를 성사토록 한 대가로 소비자가 중개사에게 주는 돈이다. 이사하는 새 집과 더불어 집 안에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 복비로 불렸다. 그래서 되도록 후하게 쳐주려고 했다.

그랬던 복비가 요즘 부동산 거래 당사자들에게 지탄과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너무 비싸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에선 "복비 무서워 집 거래 못하겠다", "중개업소가 별다른 노력 없이 비싼 복비를 챙겨간다"는 등의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복비로 불리는 중개수수료(법정 용어는 '중개보수') 인하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이 모든 게 중개수수료를 결정하는 요율(料率)이 집값에 연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보니 생긴 일이다. 우리나라 중개수수료는 거래 가격에 상한요율을 곱해 산정한다. 상한요율은 거래 금액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한마디로 중개수수료 산정 체계가 집값이 오르면 수수료도 덩달아 뛰는 구조로 짜여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집값이 비쌀수록 중개보수 요율도 높아져서 수수료 상한액이 껑충 뛴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울의 경우 집값이 9억 원 미만일 땐 중개수수료 상한요율은 0.5%이지만, 9억 원 이상일 땐 0.9% 이내로 크게 높아진다. 가령 8억9000만 원짜리 집을 살 때는 수수료가 최대 445만 원(0.5% 적용)이지만 9억 원일 경우 최대 810만 원(0.9% 적용)을 복비로 내야 한다. 집값이 1000만 원만 비싸져도 수수료가 두 배 가까이 불어나는 것이다. 더욱이 기존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옮길 경우 복비 부담은 2배 가까이 늘어난다. 집을 사고 팔 때 모두 중개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복비 폭탄’이다.

현행 중개수수료 체계로 개정된 2015년만 해도 9억 원이 넘는 집을 고가주택으로 분류해 최고 요율(0.9%)을 적용하는 것은 수긍할 만했다. 당시엔 9억 원이 넘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에서 웬만한 집은 매매값이 10억 원이 넘어 '9억 원=고가'라는 공식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모든 아파트를 가격 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값)은 지난달 기준 9억2152만 원(KB국민은행 통계)으로 2015년 1월(4억8038만 원)과 비교해 두 배 가량 치솟았다. 이로써 서울 전체 아파트(약 170만채)의 절반 이상이 수수료 최고 요율(0.9%)을 적용받는 고가주택이 돼버렸다.

부동산 중개 서비스가 나아진 것도 없는데 집값이 올랐다고 비싼 수수료를 내야 한다니 소비자로선 울화통이 터질 노릇이다. 중개사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집값을 띄운 주체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법정 수수료를 다 받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개사간 경쟁이 워낙 심해 오히려 정해진 요율보다 훨씬 낮은 수수료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거래마저 줄어 존폐 위기에 몰린 중개업소도 수두룩하다고 되레 하소연까지 한다. 그렇더라도 다수의 소비자들이 복비가 비싸다고 생각하면 비싼 것이다.

정부도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뒷말도 많다. 중개수수료 체계상 고가주택을 상향 조정하면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어서 부담을 느낀다는 분석과 함께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앞두고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중개업계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비싼 주택 거래이니 징벌적 수수료 폭탄을 묵인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중개수수료 개편은 결코 손쉬운 정책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복비 1000만원 시대'가 고착화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개수수료 산정 체계를 현실에 맞게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집값이 많이 오른 만큼 고가주택에 적용하는 최고구간을 9억 원보다 상향 조정하고 거래 구간별 상한 요율도 낮추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

이래저래 요즘 복비의 현실은 복(福)과는 멀어 보인다. 집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중개사에게 복비를 기꺼이 건넬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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