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첫 정상 통화로 경직된 한일 관계 대화 물꼬가 트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수출규제 문제가 해소되기까지는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계에선 수출규제 조치가 계속된다고 해도 단기적으로 손해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일본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난해 7월 이후 국내 업체들이 짧은 시간 내에 큰 차질 없이 국산화ㆍ공급처 다변화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다만 한일 양국 갈등이 중장기적으로 이어진다면 잠재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산업계에 따르면 스가 신임 총리 취임 이후에도 수출규제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승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일본동아시아팀 전문연구원은 “스가 총리 임기는 2021년 9월까지 1년으로, 자신이 최우선 과제로 지목한 코로나19 대응, 일본경제 회복 등도 추진하기 빠듯한 상황”이라며 “수출 규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 한국과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정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가 총리가 강경 노선을 이어가더라도 단기적인 충격은 없다는 게 업계 시선이다. 1년 3개월 넘는 수출규제 기간 동안 상당한 수준으로 국산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수출규제 품목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중에선 특히 불화수소 자립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랐다. 가스 불화수소의 경우 SK머티리얼즈가 최근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테스트 진행 중이고, 솔브레인ㆍ램테크놀러지는 액체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다.
불화수소 세계 1위 업체인 일본 스텔라케미파는 한국 반도체업계가 수입을 줄이면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1% 줄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역시 국내 업체 중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개발과 생산에 착수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경북 구미 생산시설을 통해 지난해부터 양산 중이고, SKC는 테스트 진행 단계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와 올해를 종합해보면 일본 수출규제가 국내 반도체 산업에 예상만큼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라며 “짧은 시간 안에 국내 기업들이 기술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수출 규제가 장기간 이어지는 건 잠재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모든 소재ㆍ부품을 국산화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소재나 부품이 수출규제 품목에 들어갈 가능성을 항상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산화 업체가 한정돼 있어서 해당 업체나 밸류체인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3대 핵심품목 중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 의존도가 다시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급격하게 줄었던 포토레지스트 중량은 2월부터 전년 수준을 되찾았다. 80% 중반대까지 낮췄던 수입 비중도 이 기간 다시 90% 가까이 치솟았다.
지난해 전체 수입량 비중이 0.6%에 불과하던 벨기에가 7% 수준으로 대폭 늘어나긴 했지만, 일본 포토레지스트 생산업체인 'JSR'의 벨기에 합작법인을 통한 우회 물량도 포함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다변화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생산의 필수 품목인 실리콘 웨이퍼도 지난해 대일 수입 비중 40.7%를 기록하며 오히려 전년(34.6%) 대비 6.1%포인트 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소부장 국산화가 많이 진행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가격 면에서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과도기적 징후가 나타난 것으로 본다”며 “미ㆍ중 무역갈등, 중국 기술 굴기 등 다양한 변수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일 무역갈등이 빨리 해결되는 게 중장기적인 시각에선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