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의도 따라 심사 기준 유연하게 적용해야"
정부가 공공참여형 재개발(공공재개발) 사업 성과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간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던 재개발 구역에선 공공재개발을 활로로 삼고 있다. 입지와 주택 공급 효과가 올 연말로 예정된 시범사업지 선정전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 회의에서 “현재 수십 개 조합이 공공재개발 참여 의사를 타진해오고 있다”며 “기존에 발표한 일정에 맞춰 사업지 발굴을 위한 사전절차가 차질없이 진행 중이며, 오는 12월부터 시범사업지를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공재개발 사업은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개발 구역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을 시행사로 참여시키고 용적률 규제 완화, 인ㆍ허가 간소화, 수익성 보장 등을 통해 사업성을 높여 주는 제도다. 정부에선 용적률의 경우 법적 상한보다 최고 20%까지 높여주려 한다. 대신 규제 완화로 늘어난 주택의 20~50%는 공공주택으로 기부채납해야 한다.
공공재개발은 이번 정부 주택 공급 대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주택 공급은 늘리면서도 기부채납(공공기여) 등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간 주민 갈등ㆍ사업성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재개발 구역에 공공재개발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재개발 사업에서 가장 큰 난관인 정부ㆍ지방자치단체 규제를 넘어설 수 있는 데다 정부가 공공재개발 구역에 사업성 확보를 위한 확정 수익률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 발언대로면 공공재개발 사업은 올 연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21일부터 11월 4일까지 서울 시내 재개발 구역과 재개발 해제구역ㆍ예정구역을 대상으로 공공재개발 시범사업지 공모를 받고 있다. 현재 성북구 성북1구역과 장위9구역, 영등포구 양평14구역, 동작구 흑석4구역 등 20여 곳이 공모에 응했거나 공모 의지를 밝혔다. 한강변 노른자 땅으로 꼽히는 용산구 한남1구역도 시범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건 재개발 구역 내에서 공공재개발 인기가 만만찮음을 방증한다.
서울시 등은 네 단계에 걸쳐 공공재개발 후보지를 심사할 예정이다. 1~2단계 평가엔 자치구가 참여하고 3~4단계는 서울시가 주도한다. 이 가운데 핵심 관문은 기본요건 검토와 정책성 검토다.
첫 관문은 해당 구역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는 기본요건을 갖추고 있는 지다. 구역 면적이 기본 1만㎡를 넘겨야 하고 준공 후 20년이 넘은 노후건물이 전체 건물 중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 민간 주도 재개발 사업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만큼 정비구역으로 지정됐거나 지정된 적이 있는 곳은 대부분 조건을 충족할 것으로 보인다. 재개발 해제구역 일부에선 구역 해제 후 늘어난 신축건물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정책적 요건 검토에서 승부가 갈린다. 서울시는 주택 공급 및 지역 활성화 효과가 크거나 주거 환경 개선이 시급한 구역을 공공재개발 시범사업지로 선정하려 한다. 입지 요건이 좋아 주택 수요가 많거나 반대로 공공 참여가 아니면 재개발이 어려운 지역이 우선순위가 된다는 뜻이다.
주택 공급 효과를 따진다면 다른 재개발 구역과 인접해 있거나 역세권 지역이 유리하다. 공공재개발 후보군으로 떠오르는 장위3ㆍ9구역이나 흑석1ㆍ2구역은 이미 주변 지역에서 재개발 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기반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다. 강북구 강북2구역과 강북5구역은 역세권과 가까워 재개발 파급력이 크고 입주 수요가 큰 곳으로 평가받는다.
반대로 공공성 평가 비중이 높아지면 과거 사업성 부족으로 사업이 멈춰섰던 곳에 다시 기회가 돌아간다. 정비업계 안팎에선 노원구 상계동 희망촌을 주목한다. 과거 이 지역은 상계3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사업성 부족으로 2014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서울시에서도 희망촌은 입지 특성상 민간 주도로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데다 노후ㆍ위험 건물이 많아 정비가 시급한 곳으로 분류한다. 이 지역은 공공주택 수요자인 세입자 비율도 70%를 넘어서 공공주택 공급이라는 공공재개발 정책 취지에도 부합한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민간 주도로는 주거 환경 개선이 어려운 지역이나 난개발이 우려되는 지역에서 공공재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며 "정책 의도에 따라 면적ㆍ노후도 등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