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개입이냐 견제냐'…다시 불붙은 ‘노조추천이사제’

입력 2020-09-10 17:50 수정 2020-09-1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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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힘 받는 금융노조…“그룹 혁신 차질 우려” vs “경영 투명성 확보”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이 노동이사제와 유사한 노조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네번째 시도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던 노동이사제가 부정적인 기류에 동력을 잃자, 주주의 권리를 앞세워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노조의 경영 참여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노동이사제와 전 단계 격인 노조가 인사를 추천하는 ‘노조추천이사제’는 차이가 있다. 대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주체가 노조가 아닌 우리사주조합으로 구성원에 차이가 있다.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가 2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윤종규 회장의 3연임을 앞두고 노조와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하는 KB금융 입장에선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견제를 위해 노조추천이사제가 필요하다는 노조와 경영권 개입 논란에 일으켜 금융산업 발전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시각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자는 윤순진 서울대 교수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다. 우리사주조합은 ESG위원회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서도 이들이 사외이사 추천이 수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KB금융은 지난 3월 이사회 안에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정치권 지원사격…금융권 촉각=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2017년 11월 임시 주총에서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면서 금융권 노조추천이사제 논의에 불을 댕겼다. 이듬해와 지난해까지 모두 세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진 못했다. 지난해엔 추천안을 자진 철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거대 여당과 전 노조위원장이 정계로 진출하는 등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민명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함께했다. 박 위원은 지난 1일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됐다. 현직 금융노조 위원장이 여당 최고위원이 된 것은 처음이다.

박 위원은 “이사회는 ESG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실천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면서 “객관적이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제대로 된 이사를 주주로서 추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은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KB금융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힘써온 핵심 인물이다. 지난해 1월, 19년 만에 국민은행 총파업을 주도하는 등 강경파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해 금융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노동이사제를 공약으로 앞세워 당선됐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사외이사 추천은 회사의 몫만이 아니다”라며 “정무위원회 소속으로서 국정감사 때 이런 부분을 확실히 챙겨볼 생각”이라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국책銀·공기업, 속속 합류 바람= 금융권에선 박 위원의 정치적 행보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치권의 힘을 빌려 각종 노동 현안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위원과 합을 맞출 민주당 지도부도 친노조 성향이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한정애 의원은 한국노총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국회 정무위 위원장인 윤관석 민주당 의원도 인천 부평공단 등에서 노동운동을 한 경험이 있다.

KB금융을 시작으로 IBK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노조도 노조추천이사제 추진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기업은행 노조다. 기업은행은 내년 2, 3월 각각 김정훈, 이승재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된다. 기업은행 노조는 1년 전부터 목소리를 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올해 1월 윤종원 기업은행장 취임을 반대하며 무려 27일 출근 저지 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윤 위원장으로부터 노조추천사제 도입을 약속받고 농성을 끝냈다. 김 위원장은 노조추천 이사제 도입을 포함한 노사 합의문을 도출해 냈고, 수출입은행과 캠코 등과 함께 의견을 공유하며 내년 초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노리고 있다. 지난달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좌절된 캠코도 다시 한번 도전한다. 오는 11월28일 안태환·정권영·임춘길 사외이사의 임기가 끝나면서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혁신 저해, 노조 기득권만 강화= 금융권에선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우려하고 있다. 강성노조로 꼽히는 금융노조가 경영에 간섭하게 되면 경영혁신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다. 노조추천 이사가 노조 측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만큼 노사갈등 이슈를 이사회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한 상황에서 노조 추천 이사의 반대로 경영활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점도 리스크로 꼽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노조추천이사제는 노동이사제로 가는 전 단계인 만큼 향후 노동이사제 논의로 불똥이 튈 수 있는 만큼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추천이사제로 인해 정년연장과 임금인상 등 현재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이슈가 정치적으로 쟁점화 될 가능성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추천이사제를 이야기 하면서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미 은행 자체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공공성 강화 논리는 말이 안 된다”며 “노조추천이사제를 은행에서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 기득권만 강화할 뿐 수익성과는 연관이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 교수는 “국내 은행 노동기본권 측면에서 월급과 대우가 좋다”면서 “수익적 측면에서 글로벌 100대 은행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큰 KB국민은행이 60위대로 수익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은행의 노조추천이사제는 은행 노동조합의 기득권만 강화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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