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필름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최초로 개발했다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에틸렌 비닐 알코올(EVOH)의 수급을 걱정하는 국내 업체가 많았는데, 그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도 뿌듯합니다.”
즉석밥 등 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려주는 ‘비밀 용기(容器)’의 소재인 EVOH의 국산화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조동현 효성화학 과장의 소감이다.
효성기술원에 소속돼 연구 개발 업무에 몸담고 있던 조 과장은 TS팀이 꾸려지면서 올해 3월 효성화학 POK사업단으로 자리를 옮겨 기술 개발에 이어 제품 및 시장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VOH는 식품용 기체 차단 포장제로 흔히 쓰이는 소재로, 외부 공기를 차단하고 습기 유입을 막아 식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소재는 1970년대 일본에서 개발돼 지금까지 대일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조 과장이 속한 효성화학 조성민 폴리케톤 사업단장 공동연구팀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키스트) 광전하이브리드연구센터 곽순종 박사팀은 이를 국내 기술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효성의 고분자 소재 ‘폴리케톤’과 EVOH를 7대3 비율로 섞고 화학적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Blend&Alloy)으로 EVOH보다 우수하면서 가격은 저렴한 신소재인 ‘포칼(POKAL)’을 개발했다.
조 과장은 “기체 차단성은 뛰어나지만 유연성이 떨어져 깨질 위험이 있고, 물에 닿으면 기체 차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음에도, EVOH는 그동안 대체재가 없었다”면서 “효성이 개발한 물질인 폴리케톤의 특징 중 하나가 기체 차단성이 높다는 것인데, 새로운 연구 테마를 선정하면서 폴리케톤의 성질을 필름에 적용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포칼은 순수한 EVOH와 기체 차단성이 동등하면서도 습도 저항성과 유연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됐으나, 가격 경쟁력이 우수하다. EVOH는 가격이 ㎏당 10달러 내외로 높아 광범위한 제품 적용이 어렵다.
가격 측면의 강점이 있는 포칼은 식품 포장뿐 아니라 화장품과 의약품 포장재, 연료 파이프, 진공 단열 패널 등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어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조 과장은 키스트와의 협업이 성공한 요인으로 ‘오픈 마인드’를 꼽았다.
그는 “ 연구·개발자라면 동의할 거다. 특유의 고집이 있다. 그 고집을 다 내려놓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교집합을 만들어 접점을 찾아야 한다”며 “나의 한계를 직시하고 상대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R&R(Role & Responsibility)이 명확해야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조 과장은 오픈 마인드와 함께 ‘상호 믿음’ 역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비법이라고 전했다. 조 과장은 “협업의 기본은 신뢰인데, 그 신뢰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뢰를 기반으로 성공적으로 소재 독립에 일조한 조 과장은 도전의 중요성에 대해 재차 강조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 다양한 도전을 하는 이들이 많다”며 “그 도전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대형 프로젝트인 경우도 있고, 개인의 사소한 습관 고치기인 경우도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도전하다 보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데 지나치게 좌절하거나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무의미해 보이는 경험이 쌓여 새로운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