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위해 법무부가 상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나, 이 법안들이 실효성이 크지 않을뿐더러 경영권 침해의 위험만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과 한국기업법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경영권 흔들고 일자리 가로막는 상법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16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 에메랄드룸에서 개최됐다.
이 토론회는 지난달 11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강화,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에 주총 의결정족수 기준 완화 등 상법 개정안과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들의 주요 이슈들을 점검하고 기업 경영에 미칠 영향을 살피는 자리였다.
윤창현 의원은 개회사에서 “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국민들께 문제의식을 쉽게 전달해드리기 위해 토론회 부제를 ‘경영권 흔들고 일자리 가로막는’으로 선정했다”고 행사의 의의를 밝힌 뒤 “코로나 극복과정에서 기업이 투자할 수 있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氣UP(기업) 해드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금 이 시점에 상법이라는 이름의 입법은 그 자체가 리스크”라고 말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법무부 상사법무과 이혜미 검사는 “이번에 정부가 제안한 다중대표소송제는 소수 주주의 경영감독권을 강화해 대주주의 사익추구를 막는 효과가 있다”며 “감사위원 분리선출도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에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두 번째 발제를 진행한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권재열 원장은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 서로 법인격이 다른 모자회사 간 이익 충돌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원장은 “모회사의 주주와 자회사의 주주가 각각 있는 상황에서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주의 이해관계를 무시해 버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감사위원 분리선출 역시 기관투자자에게 감사위원 선임권을 넘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평가했다.
결국,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적극적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것이 허용된 상황에서 감사위원까지 선임할 기회를 주게 돼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해치고 자칫 시장 교란을 초래할 수 있다.
권 원장은 소수주주 권한 강화를 위해 도입한 집중투표제(2인 이상 이사 선임시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 부여) 역시 이사의 대표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상법상의 집중투표제는 득표수에 따라 차례로 이사가 선임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1표만으로도 이사로 선임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한 토론에서는 집중투표제, 사외이사의 임기 단축 등의 개정안이 의도한대로 경영권 견제나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지배구조의 최종목표는 기업의 경영성과를 높이고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로 하여금 대주주를 견제하게 해줄지는 모르나 기업 성과를 높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등 해외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증분석 결과,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예상과 달리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며 “결과적으로 도입 취지와 달리 경영권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사외이사의 임기 단축 문제도 “오히려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이 길수록 기업 가치가 높고, 경영진에 대한 견제도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고, 다중대표소송도 “기대와 달리 기업에 별다른 이익을 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미국 23개주에서는 1989년부터 2005년까지 다중대표소송을 어렵게 하는 법률(Universal Demand Law·UD법)을 도입한 이후 외부투자자의 경영개입 가능성이 줄어들어 오히려 질적으로 우수한 신기술 특허출원이 증가하는 등 기업 혁신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토론에서 양만식 단국대 법과대학장은 “현행 대표소송제가 모자회사 관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다중대표소송제를 신규로 도입할 필요는 있으나, 소송 남발에 따른 리스크는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소기업의 현장 의견을 수렴해 참석한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불합리한 법령을 정비하겠다는 개정 취지는 이해하나, 경영권 침해나 규제 강화로 인식돼 경영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업계 의견을 전했다.
추 본부장은 또 “코로나 19로 대다수 기업이 미래 투자보다 당장 생존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자본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 여건에서 단기차익을 노리는 외국 투기자본의 악용을 방지하는 방안도 입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