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ㆍ여당이 민간임대사업자에게 약속했던 세제 혜택을 줄이거나 없앤다는 관측이 불거지면서 임대사업자들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세제 개편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엔 종합부동산세ㆍ양도소득세 강화 등과 함께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방안이 의제에 올랐다고 알려졌다.
최근 여권은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축소를 공론화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강병원 의원은 이달 초 임대사업자에게 주던 종합부동산세, 소득ㆍ법인세, 지방세 감면 혜택을 없애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임대사업 등록 장려해 놓고 소급적용 논란
임대사업자가 세제 혜택을 노리고 주택을 장기 보유하는 바람에 무주택자가 주택을 구매하기 어려워졌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강 의원은 "그러나 최근 임대사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악용해 부동산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으며 임대사업자가 아닌 임차인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고 주택이 주거가 아닌 투기 등의 목적으로 악용되는 등 여러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강 의원 법안에 기존 임대사업자에 대한 경과 규정이나 부칙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임대사업자 사이에선 정부가 기존에 약속했던 세제 혜택을 뒤집는 게 아니냐는 원성이 일고 있다. 그동안 세금 감면을 내세우며 임대사업자 등록을 장려했던 게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5월 말 기준 52만3000명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44만 가구를 임대하고 있다.
임대사업자의 배신감은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다. 2018년에도 정부는 임대사업자의 신규 취득 주택에 대한 양도세 및 종부세 세제 혜택을 줄이거나 없앴다. 최근엔 국세청이 명시적인 법적 근거 없이 공동명의 1주택자엔 임대주택에 주던 양도세 장기보유 특별공제 특례(장특공제ㆍ최대 70%)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정부의 정책 뒤집기에 임대사업자들은 집단행동에 나설 태세다. 최근 일부 임대사업자는 협회를 결성해 목소리를 모으기로 했다. 이들은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한 공익감사를 청구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겠다고 구상한다.
◇협회 결성 공익감사 청구 목소리… 전문가 "규모 따라 차등 적용을"
사업자 등록을 취소하겠다는 임대사업자도 늘고 있다. 정부에서 세제 혜택을 받은 등록 임대사업자가 이를 포기하면 과태료를 최대 3000만 원까지 물 수 있지만 이를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서울에서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I씨는 "이대로면 더 이상 임대사업자 메리트가 없다"며 "앞으로 전셋값을 올려 과태료를 충당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대 수요가 충분치 않고 임대료도 낮은 비(非)수도권 임대사업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냉가슴만 앓고 있다.
임대사업자 사이에서 원성이 고조되자 여당은 한발 뒤로 물러나는 모양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임대사업자를 양성화할 때 혜택을 줬던 부분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 같다. 소급적용 자체가 위헌적 요소가 커서 그렇게 할 리 없다"며 "유예기간을 두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라고 하는 조치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 의원 측에서도 의결 과정에서 단서 규정 등이 추가될 수 있다고 물러섰다.
정부에선 아직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제 법안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아직 조율이 안 된 사항"이라며 "기존에 있었던 정책 방향하고 현 상황에선 변화가 없다. 그동안에 민간 임대주택 확대 정책을 해 왔고 과도한 세제 혜택은 축소했고 관리 정책도 강화해왔다"고 밝혔다.
김태섭 한국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임대사업자가 주거 복지 측면에서 공적 역할을 수행한 공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세제 혜택을 없애 제도 자체를 죽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거래 위축 등 부작용이 있다면 그 부분은 정책적으로 조정하고 소규모, 저가 임대주택에 대한 혜택은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