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모니터’ 시리즈의 공저자 중 한 명인 윤덕환<사진> 마크로밀엠브레인 이사는 코로나19 시대를 이같이 진단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마케팅리서치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은 2010년부터 10년간 이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중이다. 매년 100개 가량의 설문조사를 실시해 소비자들의 행동과 태도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그해 트렌드를 짚어내는 식이다.
윤 이사는 무엇보다 ‘언택트(Untact·비대면)’에 스며있는 개인의 욕망을 주목했다. 다양한 인간관계와 만남이 반강제적으로 중지됐지만, 의외로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가 4월 말 종교 활동을 활발히 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종교시설 셧다운’에 대한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80%가 넘는 사람들이 종교 활동 참여 자유도가 높아진 현재 상황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했던 것이다.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윤 이사는 이런 현상이 종교 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또 한국 사회에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에 보자’는 말이 흔한 인사말이 된 현상엔 전염병을 ‘명분’으로 삼아 꺼려지는 약속을 미룬다는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며 코로나 이전 한국 사회에서 인맥, 학연, 지연 등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가 사람들에게 굉장히 강압적으로 작용해왔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다만 윤 이사는 포스트 코로나 시기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사람들이 ‘필터버블(이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필터링된 인터넷 정보로 인해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현상)’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언택트 방식이 위계를 제거해 민주적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과는 사뭇 대조되는 것이다.
그는 “민주적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불편한 걸 견딘다’는 뜻이다. 그러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유튜브, OTT(Over The Top Service) 서비스는 큐레이팅된 콘텐츠만 제공한다. 귀찮거나 번거로운 만남과 인간관계는 이어가지 않고,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유지해도 아무 지장이 없게 된다”며 “좋게 보면 ‘자발성’의 영역이 넓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편향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관대해지는 부분도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남이 아프면 나도 아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전염병의 특성 때문이다. 윤 이사는 “이 지점을 기초로 삼아 사회 신뢰도를 올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약적으로 앞당겨진 4차 산업혁명 도래도 이 흐름을 돕는다. 로봇, 인공지능(AI), 핀테크, 데이터 산업, 5G 기술 발전은 이미 기존 근로자들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 중이다. 내 일자리를 뺏어가는 게 내 옆 사람이 아니라, 첨단기술이라는 깨달음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윤 이사는 최근 촉발된 기본소득 논의를 예로 들며 “지난해 조사에선 일(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제도에 대한 호감도가 낮았다”며 “그러나 최근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손님이나 일이 없어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체감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의식과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