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전 세계 경제가 통째로 흔들리자, 주요 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 카드를 꺼내든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3개월 째 접어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촉발된 대변혁으로 정부 지원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기업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딴 세상 얘기로만 여겨졌던 일부 산업에 대한 국유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7일 산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장기화로 정부 지원 없이는 생존이 힘들어진 국내 기업들이 늘어나며 국유화를 희망하거나 국유화가 불가피한 사례가 속속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특히 현재 여런 건의 인수합병(M&A)이 진행되고 있는 항공업계에서 '항공사 국유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엄청난 걸림돌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매각 일정은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 중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말, 관련 일정을 무기한 연장했다. 특히 최근에 열린 기간산업안정기금 출범식은 아시아나항공 국유화 가능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수가 무산될 경우 2조 원 이상의 기안기금이 투입되고, 그 중 일부는 정부 지분으로 전환돼 국유화가 가능하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 역시 지지부진하다. 이스타항공 재무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아 임금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주항공에 인수되지 못할 경우 파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8년 12월 말부터 자본잠식률 50%에 육박했던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말 기준 100%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1년 만에 그나마 절반 가량 남아있던 자본금이 바닥났을 뿐 아니라 632억 원의 결손금까지 쌓인 상황이다.
실제 해외에서도 항공사 국유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여파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항공사를 구하기 위해 긴급 수혈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 정부는 프랑크푸르트를 허브로 삼고 운영해 온 온 소규모항공사 콘도르항공 국유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또 루프트한자에는 90억 유로(약 12조1409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사 지분 20%를 취득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이탈리아는 ‘알이탈리아’에 35억 유로(약 4조 7300억 원)를 지원하며 12년 만에 다시 국유화를 추진 중이며 포르투갈도 ‘TAP포르투갈’의 국영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항공사 국유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유경쟁 시장 체제에 오랜기간 적응해 온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성도 다소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항공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유화보다는 항공사들이 버틸 수 있을 기간을 고려해 그에 맞는 수준의 지원을 해주는 게 더 나을 것"이라며 "특히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더 힘든 저비용항공사(LCC)가 지원 대상에서 빠지게 되는 규정 등 현실성 떨어지는 지원책 수정 보완도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타의적인 상황이 아닌, 직원들이 공기업 전환을 희망하는 국내 기업도 있다. 두산중공업이다.
두산중공업 경영정상화를 위한 그룹 전체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두산중공업 자체적으로도 명예퇴직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하자 노조가 '공기업화'를 주장하며 반발에 나선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올 들어 두 차례에 걸쳐 만 45세(1975년생) 이상 직원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진행했으며, 이에 대해 노조는 "노동자의 고용을 담보할 대안을 경영진에게 요구하지 않고 있다”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두산중공업의 공기업화를 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공기업(한국중공업)이었던 두산중공업은 2001년 두산그룹에 인수됐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의 부채 규모가 큰 만큼 정부가 이를 떠안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 의견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어려워진 기업의 국유화 보다는 자유경쟁 시장 논리를 그대로 가져가되 정부의 맞춤형 지원이 신족하게 이뤄지는 것이 가장 적합한 방안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국유화는 산업의 패러다임을 아예 바꾸게 되는 것으로 성급하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다만 구조조정, 자본확충 등 기업 자체적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니 불확실성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산업 및 기업 특성에 맞는 현실성 있는 지원이 시급하다"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