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다] 강남‧이태원은 불꺼졌는데…‘힙지로’는 바글바글?

입력 2020-05-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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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저희랑 술 한 잔 더 하실래요?"

"아니요. 저희 이제 들어갈 거예요."

23일 오후 10시께 서울 중구 을지로3가.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에서 남성 두 명이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흘러가는 주말이 아쉬운 듯 '한 잔만 더'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이 가득 찬 술집 내부는 물론이고 술집에서 새 나오는 불빛들이 밝힌 거리 이곳저곳에서 잔을 부딪쳤다. 거리는 활기가 돌았다. 술집 직원들도 행인들을 붙잡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을지로3가역은 1~2년 전부터 '핫플'로 떠올랐다. 복고 열풍이 불면서 주목받았고, 그곳만의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가 젊은 층을 끌어당겼다. 사람들은 이곳을 '힙지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강남이나 홍대, 이태원 못지않게 많은 인파가 몰렸다. 지인들과 간단히 술을 먹는 사람들부터 이성을 만나려는 사람들까지 방문 목적도 다양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주요 번화가의 유흥주점이 문을 닫았다. 클럽이나 펍이 불을 끄자 젊은 층은 헌팅포차로 향했다.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 영업을 지속하고 있고, 이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헌팅포차 역시 코로나19의 감염 경로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을지로 일대는 클럽이나 펍, 헌팅포차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지만, 번화가와 일부 유사한 면이 있다. 이성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만난 직장인 박모(31) 씨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처음으로 을지로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날씨가 좋고, 이성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보니 핫플을 찾게 된다"라며 "이태원은 분위기가 죽어서 가기 힘들고, 이곳이 핫하다고 하길래 왔다"고 덧붙였다. 꼭 누굴 만나겠다는 심산은 아니지만, 기회라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문을 개방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술집도 많았다. 직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기도 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문을 개방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술집도 많았다. 직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기도 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여기에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 역시 닮았다. 기자가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3가 일대를 둘러본 결과 술집 직원들 가운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손님들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지만 직원들까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일반음식점의 기류와는 달랐다. 한 술집 직원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일하기 불편하다"면서 "손님들과 대화도 방해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문을 열어놨으니 괜찮다"고 답했다.

특히, 방역당국의 당부가 손님들 간에 지켜지지 않았다. '힙지로'에서 유명한 맥줏집을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은 바짝 붙어 앉았고, 테이블 사이의 거리 또한 코로나19 시국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비말에 의한 감염 가능성이 크지만,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이곳저곳에 침을 뱉었다.

유흥업소 종사자들 사이에서 '술집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느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유흥업소 종사자는 "코로나19로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졌는데 가까이 붙어 앉아 술 먹는 게 뭐가 다르냐"라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게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조처라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힙지로'를 클럽과 펍, 헌팅포차 등 유흥주점과 똑같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곳은 대개 오후 11시 30분이 되면 문을 닫는 데다, 지인끼리 시간을 보내러 온 사람들도 많기 때문. 하지만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직장인 임서연(28) 씨는 "이곳에서 식사한 뒤 술을 한 잔 마시려다 사람들 거리가 좁아 그냥 돌아가려고 한다"라며 "사람들 사이 공간이 좀 더 넓어야 할 것 같고, 꼭 해야 하는 모임이라면 야외에서 해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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