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여파가 다시 인천국제공항에 쏠린다. 정부가 ‘임대료 20%’ 인하 지침을 내놨지만, 입점 업체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후퇴하는 모양새다. 면세업계는 최장 10년간 운영할 수 있는 연 매출 1조 원 규모의 제1 터미널 면세점 사업권을 포기했고, 인천공항에 입점한 업체는 수백억 원대 적자에 직면하자 ‘임대료 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ㆍ신라면세점에 이어 중소ㆍ중견 면세 사업자인 그랜드면세점 역시 인천공항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그랜드면세점은 지난달 9일 인천공항 1터미널 DF8(전 품목) 사업권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지만, 롯데ㆍ신라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에 공항 이용객이 급감하고 매출이 쪼그라들자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면세점 사업권을 내놓게 됐다.
8월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 제1 여객터미널(T1) 면세 사업권 입찰은 5년 동안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고, 평가 기준에 만족하면 추가로 5년을 더해 최대 10년까지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다는 조건 덕에 입찰 전부터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여파로 SM면세점이 가장 먼저 사업권 입찰 포기한 데 이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롯데ㆍ신라ㆍ그랜드면세점마저 계약을 포기했다.
이들 업체 외에 DF7(패션·기타) 우선협상 사업권을 획득한 현대백화점면세점, DF9(전 품목) 사업권을 따낸 시티플러스와 DF10(주류·담배) 구역을 딴 엔타스듀티프리는 우선협상 결과에 사인했고 조만간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제4기 면세사업권 임대료는 9월을 기준으로 1년차엔 입찰 시 낙찰받은 금액으로 고정되지만, 운영 2년차부터는 직전년도 여객 증가율을 기준으로 최대 9%까지 임대료가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문제는 올해 상반기 여객 수가 사상 최저로 빠지면서 기저효과로 내년도 여객 증가율이 최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롯데 신라 그랜드면세점은 코로나19 이후 여객 수가 정상화되면 여객 증가율이 오를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감안해줄 것을 이번 계약에 요청했지만, 협상은 불발됐다. 결국 이들 업체는 사업권을 포기하게 됐다.
정부의 ‘20% 인대료 감면’도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운영 사업자의 경우 올해 여객수가 급감한 만큼 내년도 6개월간 최대 9% 임대료를 감면받을 수 있지만, 인천공항은 3~8개월 임대료를 감면해주는 대신 내년도 감면 혜택을 포기하라고 주장한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임대료 감면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인천공항이 내건 조건에 동의하기 어려워서 선뜻 신청서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늘 입점업체들이 다시 공항공사와 간담회를 열고 신청서 내용과 관련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10년 사업권이라서 어떻게든 가져가는 게 좋겠다고 막판까지도 생각했지만, 코로나19로 매출 타격이 3월부터 극심해졌다. 당장 임대료로 부담이고 언제 다시 매출이 회복될지 모르는 시점이라 사업권을 취득하는 게 오히려 손해가 난다고 판단해 사업의 불확실성을 없애고자 사업권을 포기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면세 사업권을 포기한 만큼 향후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정직원은 인력 재배치를 할 것이고 협력사 직원들의 고용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바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면세업계와 함께 인천공항 임대료 인하를 요구해 온 업체들은 ‘임대료 20% 인하’라는 정부 지침은 실효성이 없다며 8일 정부에 임대료 면제를 포함한 지원책을 재차 요청했다. CJ푸드빌, 아워홈, 풀무원푸드앤컬처, 파리크라상, 아모제푸드, SK네트웍스 워커힐, 롯데지알에스주식회사 등 인천공항에 입점한 7개사는 ‘식음사업자 회생을 위한 방안’을 담은 호소문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발송했다.
이들이 요구한 지원책에는 인천공항 이용객이 90% 이상 회복될 때까지 임대료를 면제해달라는 내용과 향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기존 계약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인천공항에 입점한 식음 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금 우리 상황은 고사위기다. 7개 업체가 3월에 인천공항에서 올린 매출은 60억 원인데 우리가 내야 할 임대료는 70억 원으로 더 높다. 여기에 인건비, 재룟값 등 각종 빠져나가는 비용을 더하면 3월만 해도 100억 원이 넘는 적자가 났다”라며 “200개 넘는 매장 중 80%가 현재 임시휴업하거나 단축영업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적자가 어마어마하다.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