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A씨는 지난해 큰맘을 먹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형으로 이사 갔다. 자녀들 입시 뒷바라지를 하려면 학원가 근처로 이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몸테크’(재건축을 노리고 노후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를 하다 보면 목돈을 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A씨는 지난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아파트 보유세로 420만 원을 냈다. 올해 A씨의 보유세 부담(610만 원)은 190만 원 는다. 종부세 세율이 오르는 데다 A씨 아파트 공시가격이 11억5200만 원에서 15억9000만 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18일 올해 전국 공동주택 1383만 채의 공시가격 안(案)을 발표했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국적으로 평균 5.99% 올랐다. 28.4%가 오른 2007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폭이다.
정부는 특히 고가주택 공시가격을 크게 올렸다. 공시가격 신뢰성과 조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선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높여야 한다는 게 명분이다. 올해 시세 9억 미만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평균 1.97% 상향됐지만, 9억 원 이상 고가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21.15% 뛰었다. 특히 시세 30억 원 이상 초고가 주택은 공시가격이 1년 새 27.4% 올랐다.
지역별 상승률을 봐도 이 같은 기조를 읽을 수 있다. 전국 고가주택 중 78%가 몰려있는 서울지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평균 14.75% 인상됐다. 전국 시ㆍ도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강남3구’라 불리는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에선 공시가격 상승률이 각각 25.57%, 22.57%, 18.45%였다.
서울 외 지역에선 대전이 유일하게 두 자릿수 상승률(14.06%)을 기록했다. 김영한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시세가 많이 오른 게 (공시가격 상향)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은 전국 시ㆍ도 중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상승(15%)한 지역이었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아파트 보유세 부담도 늘어난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부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등을 부과하는 기준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주택자나 강남권 고가아파트 보유자는 부담이 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집값 잡기’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고가 아파트로 꼽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형은 공시가격이 19억400만 원에서 25억7400만 원으로 오르면서, 보유세 부담이 1123만 원에서 1662만 원으로 늘어날 상황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세계 경기 침체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이 커지면서 고가주택 보유자ㆍ다주택자가 느끼는 주택 처분 압력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장기 보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6월 말로 끝나면서 이들의 조바심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실제 강남권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1~2주 새 급매물이 늘면서 주택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주택시장 활황기보다 위축기에 수요자들이 보유세 증가에 따른 세부담을 더 민감하게 느낀다”며 “다주택자 중심으로 보유와 처분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듯하다”고 전망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도 “경기 위축에 따른 주택 구매력 감소와 부동산 시장의 냉각 가능성을 높이는 감염 공포가 부동산 수요의 관망과 심리적 위축을 낳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세 부담까지 가중될 경우 향후 주택시장은 거래량 감소와 함께 가격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4월 총선이 정부의 보유세 증세 기조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세율 인상을 위해 여당이 발의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 종부세 인상에 반대하는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종부세 인상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