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서 9억 원대 아파트를 매매하기로 한 K씨는 부랴부랴 계약일을 닷새 앞당겼다. 자금 출처 증명 대상이 확대된다는 소식에 귀찮은 일은 피하자 싶어 결정했다. 불법으로 마련한 자금은 없지만 부부의 신용대출과 주식거래자금까지 일명 '영끌(영혼까지 끌어다 대출)'로 마련한 자금을 일일히 소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13일부터 6억 원 이상 주택을 거래할 경우 사실상 지역에 관계없이 자금조달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경기 수원·의왕시 등 조정대상지역에서는 3억 원 이상 주택 거래 계약을 맺으면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 원 초과 주택을 사면 자금조달계획서 증빙서류도 내야 한다.
위 사례의 K씨가 당초 예정대로 13일이 지나 거래를 했다면 자금조달계획서뿐만 아니라 자기가 낸 계획서가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빙서류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 K씨가 내야할 서류는 부부의 은행계좌 6곳과 주식계좌 1곳의 입출금 내역과 거래내역, 보험사 대출 거래 내역, 소득금액증명원, 부동산 임대차계약서 등 수 십장에 이른다.
용산구 이촌동 J공인 관계자는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거래는 13일 이후에 체결된 매매계약으로, 원칙적으로 13일 이전 시점에 있었던 계약은 제출 의무가 없다"며 "가능할 경우 13일 이전 거래를 권하고 있으며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집주인과 수요자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다수"라며 "그렇다고 규정을 피하기 위해 계약일을 앞당겨서 거짓 신고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난감해하는 수요자들도 많다"고 전했다.
13일 이후 매매계약에 나서는 경우에는 당장 마련해야 할 증빙자료 마련에 벌써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등포구 당산동 T공인 관계자는 "어떤 자료를 어떻게 내야하는지 헷갈려 하는 수요자들이 많아 관련 문의 역시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일단 아는 내에서 안내를 하고 있지만 애매한 부분이 많아 우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초고강도 규제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이 더 경직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1만여 건에 육박하던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는 12·16 대책 이후인 올해 1월 6335건을 줄었으며 2월에도 6202건에 불과했다.
이달 들어서는 거래 건수가 522건에 그쳤다. 지난달 21일부터 주택거래신고일이 종전 60일에서 30일로 단축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은 수준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부동산 거래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면서 거래 총량이 줄 수 있다"면서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기가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교수도 "집을 어떻게 샀는지 하나하나 다 증명하라는 것은 사실상 주택거래허가제를 실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은 장기적으론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