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불문하고 전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다는 점과 고연봉 때문에 꿈의직장으로 불렸던 항공사들이 한순간에 기피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대한민국 항공 70여년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미ㆍ중 무역 갈등과 보이콧 재팬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은 수익성 악화로 퇴직, 휴직 등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최대한 줄이고 있지만, 암흑같은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아 그 어느때보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노 재팬'과 '홍콩 민주화 시위' 여파로 지난해 국적사들은 이미 마아너스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일본 노선이 전체 매출의 20~30%에 달하는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지난 한 해에만 무려 2000억 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하늘길이 점점 폐쇄되고 있어 올해도 우리 항공사들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2월 1∼3주 전체 국제선 여객은 310만명에 그쳐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3.7%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작년 12월(760만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코로나19가 확산 기미를 보인 1월에도 국제 여객수는 788만명이었다.
존폐 위기에 처한 항공업계는 고강도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유급휴직, 무급휴직, 순환휴직, 단축근무는 물론 사직서 제출까지 할 수 있는 방안은 모두 동원하고 있으며, 비행기가 뜨지 못하다 보니 이번에는 억대연봉 조종사들도 대상에 포함됐다.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은 모두 전직원 대상 휴직 시행은 물론 전 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 아시아나는 한창수 사장을 비롯한 임원 38명 전원이 사표를 제출하고 급여 30~40%를 반납하기로 했으며 조종사 포함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열흘간 무급휴직을 실시했다.
에어부산, 에어서울도 대표 이하 모든 임원은 일괄 사직서를 제출하고, 임원들은 20~30%, 부서장은 10%의 임금을 자진 반납했다.
대한항공은 객실승무원에 한해 지난달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연차 소진에 의한 유급휴가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전직원 대상 희망자들에 한해 이달부터 6월까지 최대 4개월간 유급 휴직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티웨이항공은 전 직원들로부터 희망휴직을 받고 있다.
국토부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진에어는 전체 직원들로부터 최소 1주에서 최대 12개월까지 무급휴직 신청을 받는다.
비상 경영 체제 돌입한 이스타항공도 객실ㆍ운항 승무원을 제외한 직원들로부터 근무일ㆍ근무시간 단축 신청을 받고 있으며 임원들은 급여의 30%을 반납했다.
이처럼 항공사들은 최대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공급 과잉에 수익 창출 공간인 하늘길마저 무너지고 있어 미래마저도 암울하다. 시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앉는 항공사들도 예상보다 빨리 생겨날 가능성도 커지는 이유다.
항공사 관계자는 "지금은 어떻게든 구조조정을 통해 버텨내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면서 "그 어떤 답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A항공사 직원은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우려했으며, B항공사 직원은 "현재 8개의 항공사 중 몇 개의 항공사가 살아남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에 다급해진 LCC CEO들은 급기야 정부에 조건 없는 긴급 금융 지원을 요청했다. LCC 6곳 사장단은 28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하며 보다 신속한 자금조달을 위한 규제 완화, 지원규모 확대, 세금 감면 등을 요청했다.
LCC 사장단은 "항공사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자구노력을 하고 있고, 1만 명 이상의 항공사 임직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임금 반납 등 고통 분담에 동참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의 국가적 재난은 항공사 자체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아 하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