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금융 보험피해 구제기관’.
A사는 자사를 소개하는 홍보 글귀를 이같이 정했다. 금융감독기관, 보험협회도 아닌 사설 업체인 이 회사는 스스로 보험상품 피해 구제기관을 표방하고 있다. A사는 이른바 보험 민원 대행사다. 이들은 고객을 부추겨 보험사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고, 보험환급금을 받아내 최대 20%의 수수료를 챙긴다.
보험 민원 대행사가 27일부터 자칫 ‘물 만난 물고기’가 될 수 있다. 이날 국회 통과가 유력한 ‘금융소비자보호법’에는 위법계약 해지권이 포함됐다. 이는 최장 5년 이내에 가입한 금융상품의 해지권을 보장하는 법으로, 금융사는 정당한 이유의 해지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보험업계는 보험 민원 대행사가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험 민원 대행사, 보험사 약점 ‘금감원 민원’ 악용 = 보험 민원 대행사는 보험사의 최대 약점인 금감원 민원을 악용한다. 보험사는 금감원 민원 건수가 많아지면 보험사 신뢰도 하락과 검사 등 불이익이 크다. 여기에 보통 보험계약 중도 해지는 절반도 돌려받지 못하지만, 보험 민원 대행사는 불완전판매 입증을 유도하고 보험사를 압박해 전액을 돌려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얼핏 들으면 A사는 보험 소비자를 돕는 곳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객에게 착수금 명목으로 최대 15만 원을 받아 가지만, 환급에 실패해도 돌려줄 책임은 없다. 악성 민원 급증과 추가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생명·손해보험협회는 최근 A사를 현행법 위반으로 보고 형사고발했다.
지난해 생명·손해보험 민원 가운데 악성 민원으로 의심되는 건수가 크게 늘었다. 금감원이 집계한 지난해 1~3분기 손해보험 민원 가운데 ‘보험금 산정 및 지급’ 유형은 961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2%(1118건)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보험금 산정과 지급 건으로 조사됐다. 생명보험 민원은 2018년 즉시연금 분쟁 민원 증가 기저효과로 전체 건수는 6.7% 감소했다. 하지만 불완전판매 등 ‘보험모집’ 유형은 683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다.
◇‘성공 사례’ 간증 올려놓고 홍보…착수금만 받아도 구제 불가 = 한 대형 보험 민원 대행사는 자사 홈페이지와 각종 SNS를 통해 보험 민원 제기를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성공 사례만 나열하고 실패가 단 한 건도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착수금 명목으로 10만~15만 원을 선취한 뒤 보험금을 환급받지 못해도 이를 돌려주지 않으며 성공보수로 환급금의 최대 20%를 수취했다.
보험협회 측은 2017년 이후 같은 양식과 유형의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감지하고 대응에 나섰다. 협회는 이들이 민원인을 도와 해약환급금 전액을 받아내는 행위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법적으로 대응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현재 보험사에는 환급 정식 절차가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금감원 민원을 이용해 변호사도 아닌 사람이 금융사에 민원을 넣도록 돕는다”며 “민원 대행 업체가 무료로 시민을 위해 한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결국 사익을 취하기 위해 민원 대행업을 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보험 민원 대행 업체는 보험대리점으로 등록해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