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단체와 사단법인 한국산업용재협회가 유진그룹의 산업용재 시장 진출을 재규탄하고 나섰다. 유진그룹 계열사 이에이치씨(EHC)가 서울행정법원에 낸 행정소송에 대한 상고심 판결을 앞두고, 소상공인 관련 단체들이 판결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한국산업용재협회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송치영 한국산업용재협회 부회장, 박병철 한국베어링판매협회장, 신찬기 한국산업용재협회장,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 사상철 한국인테리어경영자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유진그룹이 합법을 가장해 소상공인의 일터를 뺏고 있다고 주장했다. EHC는 2018년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에이스 홈센터 금천점을 열었다. 에이스 홈센터는 공구·철물·인테리어 자재·생활용품 원스톱 쇼핑 매장으로 글로벌 건자재 유통기업 ‘에이스 하드웨어’의 국내 독점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 EHC는 그뒤 목동, 용산, 고양 일산점까지 개점해 현재 4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EHC는 2018년 4월경 에이스홈센터를 개점하려고 하다가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의 제지를 받았다. 소상공인들의 반발을 수용한 중기부는 사업조정심의회를 열고 에이스 홈센터의 개점을 3년 연기하라고 권고했다. 그 뒤 EHC는 중기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에 돌입했다.
지난해 2월 서울행정법원은 EHC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어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EHC의 손을 들어줬다. 마지막 상고심 심리는 지난달 말 시작돼 빠르면 이달 말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신찬기 한국산업용재협회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유진그룹은 정부에 맞서 힘과 자본력으로 행정소송을 통해 영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힘 없는 우리는 대법원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진기업은 이윤을 위해 소상공인의 생계를 아랑곳하지 않고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목숨을 걸고 투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협회는 대법원이 또다시 EHC의 손을 들어주면, 승소가 확정돼 EHC가 공격적인 투자로 골목상권을 초토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밑바닥까지 추락한 골목상권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도 EHC가 승소할 시 매장이 급속하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대법원이 EHC의 손을 들어 준다면 소상공인 시장은 무너질 것”이라며 “EHC가 수백, 수천 개의 매장을 낼 것이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 그래도 코로나 19 때문에 소상공인이 죽어가는 판”이라며 “대법원 현장에서 할복이라도 해야 할 심정”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협회는 에이스 홈센터 매장 개점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제시하지 못했다. 송치영 한국산업용재협회 부회장은 “작년 초 조사 때만 해도 타격을 본 소상공인들이 20% 이상 매출액 감소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안수헌 한국산업용재협회 사무총장은 “정부가 별도 예산을 투입해 현장 실사를 펼치지 않는 한 구체적인 자료가 나오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
EHC는 고객과 지역 시공업자를 연결해 주는 ‘에이스맨 서비스’ 등 나름의 상생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도 소상공인들은 ‘마케팅 수단’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승재 회장은 “상생을 마케팅의 일환으로 펼치는 데 문제가 있다”며 “마케팅과 상생은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진그룹 EHC 관계자는 “에이스하드웨어가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소상공인뿐 아니라 중소제조업체들과 좋은 파트너십을 통해 경쟁이 아닌 전체 시장을 함께 키워 동반성장할 수 있는 의견을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고객과 소상공인, 에이스하드웨어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상생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