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중년 남성이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가 보건소 간호사로서 맡았던 우울증 사례였다. 항상 작업복 차림이던 그가 그날은 정장 차림으로 와서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게 설마 마지막 인사인 줄 알지 못했단다. 주변에선 자살을 어떻게 막냐고 위로했지만 그녀는 거기에 멈추지 않았다. 자살 예방 NGO의 세미나를 찾아갔고 일본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아다치구의 자살 예방사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의 사연을 들으며 작년 마지막 날 황망한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고 임세원 교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99년 어느 날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였던 그도 자기 환자의 마지막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받고 뭔가 이상했지만 지나쳤다. 그리고 자책하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도 거기에 멈추지 않았다. 10년이 지나 대학병원에 자리를 잡고는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보고·듣고·말하기 한국형 생명지킴이 교육을 만드는 데 헌신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경고신호를 보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듣기와 말하기를 통해, 필요하면 전문서비스에 연결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말한 핵심이었다.
우리나라 자살예방법은 3조에 자살위기에 처한 국민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구조를 요청한 권리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 권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적어도 2018년 기준으로 1만3670명, 즉 1만3670번 실패했다. 그 이유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위 사람들이 이들의 구조요청을 알아차리고 발견해 희망을 찾아가는 노력을 함께 해 나아가는 것이 자살 예방의 핵심이다.
자살 예방이 작동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무원이 다른 부서를 하나하나 찾아 자살 예방을 위해 줄 수 있는 서비스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고 구청장도 자살 예방 세미나에 매년 맨 앞에 앉아 동참하고 정기적으로 모든 부서가 자살 예방에 관련한 회의를 주재해 나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면서 위험에 빠진 한 사람을 위해 여러 부서가 머리를 맞대는 시스템을 갖춰 나갔다. 수백 개의 복지와 보건서비스가 있어도 실제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또 한 번의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정책으로 만들어 안전망을 강화하는 과정을 통해 작동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자살 고위험군을 구조하는 지방자치단체 실력의 핵심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2018년 정부는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을 발표했고 국회는 국회자살예방포럼을 결성해 2018년에만 12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자체도 매년 자살 예방계획을 수립해 점검하고 있다. 지자체장이 앞장서서 자살 예방을 추진한 지자체는 예외 없이 성과가 나타났다. 실제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면서 그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는 공무원, 그리고 그가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지자체장을 새해엔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