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3년 전, 미국 아마존은 한 번의 클릭만으로 주문이 완료되는 '원클릭 특허'를 출원했다. 이 간단한 특허는 무려 2조5000억 원에 달하는 가치를 내며 아마존을 온라인 쇼핑업계 글로벌 1인자로 만들어줬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됨에도 기업들이 '특허 확보'에 사활을 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011년 4월을 기점으로 삼성-애플 간 금세기 가장 치열한 '특허전쟁'이 시작되며, 글로벌 특허분쟁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21세기 ‘특허’는 경쟁사를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창이자, 기업 자신을 보호하는 최고의 방패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치열하고 극렬한 ‘특허전쟁 지난 10년, 미래 10년’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승자도 패자도 없는 악연이 마무리됐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치열하고 뜨거웠던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이 지난해 7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1년 4월 애플은 삼성전자가 자사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디자인 도용 혐의로 삼성전자를 제소했다. 애플은 10억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애플은 또 삼성전자가 디자인 특허를 침해한 스마트폰을 판매하면서 23억 달러의 매출과 10억 달러의 이익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배상액 산정의 기준을 제품 전체가 아닌 일부 부품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요지의 변론을 폈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애플 제품의 수입금지를 신청하며, 애플에 맞대응했다. 애플 역시 ITC에 삼성 제품 수입금지를 신청했다. 삼성은 한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법원에 애플을 제소했고, 애플도 한국, 일본 법원 등에 삼성을 제소하고 네덜란드 법원에 삼성제품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며 맞대응했다.
사실상 글로벌 특허대전으로 비화된 것이다.
2013년 11월 미국 법원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에 2억9000만 달러의 추가 배상을 평결했다. 1심에서 결정된 손해배상액은 9억3000만 달러였다. 삼성은 디자인 특허 침해 부분에 대해서만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으로부터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지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손해배상액을 다시 산정하기 위한 재판이 진행돼왔다.
지난해 5월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지법의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해 5억3900만 달러(약 6000억 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유틸리티(사용성) 특허 침해에 관해서는 이보다 훨씬 적은 53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앞서 2015년 애플에 배상액 5억4800만 달러를 우선해서 지급했으며, 이중 디자인 특허 침해 배상액은 약 3억9000만 달러였다.
삼성과 애플은 지난 2014년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 법원에서 제기된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2018년 양측의 소송 종결로 삼성과 애플의 7년 분쟁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양사가 길고 긴 공방을 끝낸 것은 누적된 소송 피로감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2011년부터 무려 7년이나 긴 소모적인 싸움을 벌여왔고, 그 사이 중국 등 후발업체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스마트폰의 교체주기가 길어지면서 스마트폰 시장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애플이 싸움을 이어가 봤자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후발주자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분석이다.
애플과 퀄컴은 ‘짧고 굵게’ 30조 원짜리 특허전쟁을 벌였다. 2017년 애플은 “스마트폰 모뎀칩 공급업체인 퀄컴이 독점 지위를 이용해 2013년부터 특허 사용료를 과도하게 요구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과 아이폰 제조업체 4곳은 퀄컴을 상대로 270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반면, 퀄컴은 애플과 제조업체들이 계약을 위반했다며 최소 70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수십억 달러의 피해보상도 요구했다.
양측의 법정분쟁은 2년 만에 극적인 합의에 도달하면서 마무리됐다. 퀄컴과 애플은 지난해 4월 분쟁을 종결하면서 6년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으며 퀄컴이 애플에 차세대 이동통신망인 5G용 모뎀 칩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특허는 기존 시장 지배자와 후발주자와의 헤게모니(hegemony) 싸움에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는 2016년 삼성전자가 4세대 통신 표준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걸었고 삼성전자가 이에 맞대응하면서 양쪽의 공방이 계속됐다. 양사는 지난해 특허 사용, 즉 ‘크로스 라이선스’에 합의하면서 3년 특허분쟁을 종결했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아르첼리, 베코, 그룬디히를 상대로 양문형 냉장고 특허 기술이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하이센스를 상대로는 TV 관련 특허 침해, TCL은 휴대폰 LTE 통신기술 침해를 주장하며 소송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특허전쟁이라는 게 주로 시장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에 지난 10년간 글로벌 특허분쟁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된 건 없다고 본다”며 “특허를 쥐고 있는 것이 곧 힘이고 경쟁력인 시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