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개발 과정 혁신적 변화…현대기아차, VR 활용 '버추얼 개발' 도입

데이터 기반 디자인 'DDD 프로세스', 내년 모든 차종 개발에 적용…"시간ㆍ비용 획기적 감축 기대"

▲현대기아차 연구원들이 경기도 화성시 소재 남양연구소 VR 품평장에서 자동차의 내외부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현대기아차)

현대ㆍ기아자동차가 전통적인 자동차 개발 과정을 혁신적으로 바꾼다. 디자인과 설계 등 전반적인 개발 과정에 가상현실(VR)을 활용하는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가동함에 따라 추후 자동차 개발 기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현대ㆍ기아차는 17일 버추얼 개발 도입을 발표하며 경기도 화성시 남양기술연구소에서 VR을 활용한 디자인 품평장과 설계 검증시스템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광현 현대ㆍ기아차 디자인모델개발실장은 “전통적인 디자인 과정이 스케치로 클레이 모델을 만드는 방식이라면, 버추얼 개발은 데이터로 만든 디자인 모델을 실물에 가깝게 구현하는 방식”이라며 “이러한 DDD(Data Driven Design) 프로세스를 내년부터 모든 차종 개발에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는 올해 3월 150억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VR 디자인 품평장을 만들었다. 이곳은 20명이 동시에 VR을 활용해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는 시설로, 자동차 실물을 보는 것처럼 외부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고 차 안에 들어가 내부에 타고 있듯 실내를 살펴볼 수도 있다.

품평장 내에 설치된 36개의 모션캡쳐 센서는 평가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1㎜ 단위로 정밀하게 감지하고, 이에 따라 평가자는 가상의 공간에서 간단한 버튼 조작만으로 차의 부품과 재질, 색상 등을 바꾸며 디자인을 살필 수 있다.

이번 VR 시설 도입으로 양사는 선행 디자인 모델을 일일이 실물로 제작하는 자원 소모를 줄이고, 제작 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지난 10월 공개한 수소 전용 대형트럭 콘셉트카 넵튠의 최종 디자인 평가를 이곳에서 처음 진행한 데 이어, 앞으로 개발하는 모든 신차에 VR 품평장을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유럽과 미국, 중국, 인도 디자인센터와 협업해 전 세계의 현대ㆍ기아차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에서 차를 디자인하고 품평하는 ‘원격 VR 디자인 평가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김 실장은 “지난주에 그랜저 후속 모델 개발 회의를 이곳에서 진행할 정도로 VR 작업은 일상의 시스템이 됐다”며 “앞으로는 글로벌 디자인센터와 협업하며 개발 단계에서부터 현지 시장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 연구원들이 VR을 활용한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을 통해 가상의 환경에서 자동차의 설계 품질을 평가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기아차)

현대ㆍ기아차는 설계 작업에도 VR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미 양사는 지난해 6월 VR을 활용한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을 구축해 시범 운영해왔다. 이 시스템은 3차원 설계 데이터를 모아 디지털 차량을 만들고, 가상의 환경에서 차의 안전성, 품질, 조작성에 이르는 전반적인 설계 품질을 평가한다.

기존에도 디지털 차량 평가는 진행됐지만, 2D 환경에서 주행 화면을 보는 것에 불과해 실제 차의 성능을 정밀하게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 구축한 VR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은 자동차의 운행 환경까지 가상으로 만들어 부품 간 적합성이나 움직임, 간섭, 냉각 성능 등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 평가의 정확도를 높인 점이 특징이다.

연구원들은 VR 장비를 착용한 뒤 가상의 디지털 자동차를 직접 운행할 수 있고, 운행 중인 차를 절개해 엔진의 움직임이나 부품의 작동 상황을 확인할 수도 있다. 실제 차에서 불가능했던 검증이 가능해짐에 따라 실물 평가보다 더 빠르고 정확히 문제점과 개선 사항을 파악할 수 있을 전망이다.

현대ㆍ기아차는 추후 생산 및 조립 라인 설계에도 VR을 도입해 조립성을 검증하고 효율적인 환경을 설계할 예정이다.

이번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도입으로 현대ㆍ기아차는 품질 향상과 비용 절감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개발 방식이 전 과정에 도입되면 신차 개발 기간은 약 20%, 개발 비용은 연간 15%가량 줄일 수 있을 전망이다.

먼저, 자동차 콘셉트 설정 단계부터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어 불확실성이 높아진 차 시장의 대처 능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또 실물 시험차 생산 후 시행하던 품질 검증을 선행개발 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어 상당한 수준의 품질 검증 능력을 갖출 전망이다.

양희원 현대ㆍ기아차 바디 담당 전무는 “버추얼 개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며 “버추얼 개발이 현대ㆍ기아차의 경쟁력이 되고 한층 도약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