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이 연말 본부장급 인사를 앞두고 행장의 재량권이 대폭 축소된 내부 인사 규정으로 고심이 깊어졌다. 행장의 인사권보다 외부기관 평가 비중이 높아진 새로운 규정에 따라, 이번 인사에서 방 행장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1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이날 본부장 인사를 위한 1차 본부장후보심의위원회 회의를 연다. 내부공모를 통해 본부장을 선임해야 한다는 변화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번 주 내 2차 회의가 끝날 예정이며, 두 번의 회의를 통해 본부장 지원자들의 서류심사를 마친다.
본부장후보심의위원회는 전무이사, 상임이사, 사외이사 등 총 3명으로 구성되며, 위원회의 서류심사 이후에는 외부 기관으로부터 평판 조회가 이뤄진다. 내부에서는 행장·전무이사·상임이사로부터 임원 평가와 조합원으로부터 여론조사가 진행된다.
수은의 본부장은 기본 임기가 2년이며 행장의 재량에 따라 1년 연임이 가능하다. 내년 1월 초 임기가 만료되는 본부장은 총 5명이며, 이 중 2명의 본부장은 임기가 만료됐다. 나머지 3명은 최소 6개월, 최대 1년의 연임이 결정됐다.
방 행장은 여타 국책은행이나 시중은행과 달리 행장의 인사 권한이 대폭 줄어든 수은의 내부 공모 제도에 불만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달 초 노조와의 면담에서 “손발 다 묶어두고 무슨 인사를 하라는 것이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내부 공모 제도는 올해 3월 공식적으로 ‘본부장 공모 선임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규정화됐다. 이전까지는 행장의 의지에 따라 공모 절차가 진행되거나 인사가 결정됐지만, 이제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행장의 인사 재량권을 대폭 축소한 본부장 공모 시스템은 은성수 현 금융위원장이 수은 행장으로 재직 시절 처음 도입됐다. 은 위원장은 행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인사 시스템 내에서는 본부장 충성경쟁이 지속할 것으로 판단, 공모 방식으로 본부장 인사 제도를 개편했다.
이런 내부 공모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구성원의 조직에 대한 불신과 어수선한 조직문화가 있었다. 수은은 2016년 당시 큰 적자를 기록하고, 경영혁신안을 이행 중에 외부 컨설팅을 받았다. 컨설팅 결과 조직 구성원의 본부장에 대한 신뢰도는 7%라는 저조한 수치를 기록했다.
신현호 수은 노조위원장은 “컨설팅 기관은 수많은 기업의 컨설팅을 진행했지만 이렇게 낮은 수치는 처음이라며 심각하다는 평가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 문화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나온 것이 현재의 내부 공모 제도”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인사 시스템이 행장과 수은, 양측에 이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공모 제도가 워낙 투명한 인사 시스템이다 보니 다음에 어떤 낙하산 행장이 오더라도 인사로 조직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됐다. 방 행장으로서는 아직 내부 직원들 파악이 덜 된 상황에서 계량화된 평가로 본부장을 선임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