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법조인 등용문’이었던 사법시험은 1963년 도입돼 나이, 성별, 학력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던 반면, 경제활동 없이 수년간 사법시험에 매달리는 ‘고시 낭인’을 비롯해 전관예우, 사법연수원 기수제 등 부작용으로 2017년 사실상 폐지됐다. 대신, 3년 과정의 전문 법과대학원인 로스쿨이 2009년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됐다. 당시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선발 시험’이 아닌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었다. 로스쿨의 비판점으로는 높은 학비, 입학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 등이 제기돼왔다.
이 가운데 자유한국당 당 대표 산하 특별기구인 ‘저스티스 리그’는 10일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저스티스 리그 공동의장 정용기 의원이 대표 발의해, 2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변호사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현재 변호사시험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만 응시할 수 있다. 반면 예비시험 도입 법안은 법학전문대학원의 고비용, 학력 및 나이 차별, 주간 전일제 운영방식 등으로 인해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는 이들에게 법조인이 될 기회를 열어 준다는 취지다.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로스쿨을 수료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응시자격은 20세 이상 국민으로 하되, 로스쿨 재학생과 졸업생은 응시를 제한했다.
저스티스리그 측은 “2017년 폐지된 사시는 계층 사다리 역할을 했는데, 로스쿨을 졸업해야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현행 제도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부모의 권력과 재력 등이 자녀의 로스쿨 입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다.
이에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로스쿨협의회)는 11일 비판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고 변호사 예비시험 도입을 골자로 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을 발의한 자유한국당을 거세게 규탄했다. 예비시험의 경우,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사법개혁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주장이다.
로스쿨협의회는 “경제적 약자와 지역 인재의 선발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입학 공정성 측면에서도 투명하고 공정한 입학전형이 이뤄지고 있어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했다.
실제로, 각 대학 로스쿨은 등록금 총액 대비 30% 이상을 장학금으로 지급해야 하고, 이 가운데 취약계층 장학금을 70% 이상 지원해야 한다. 이에 올해 기초~소득 3분위 학생 1040명이 등록금을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받았다. 로스쿨 전체 정원의 약 17%에 해당하는 규모다. 학생 선발에서도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전형절차를 뒀다. 이 같은 전형을 마련하지 않으면 교육부장관의 시정명령과 정원감축 조치, 인가취소, 벌칙 등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처벌조항도 마련했다.
예비시험이 사시의 폐해를 재생산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로스쿨협의회는 “예비시험 도입은 이미 일본에서 시도됐으나 극소수의 인원만 합격할 수 있어 사시보다 어려운 시험”이라며 “변시낭인이 발생하는 등 일본 로스쿨의 주된 실패 원인을 제공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비시험은 정규코스가 아닌 우회로인 만큼 합격 인원을 소수로 제한할 수밖에 없어 사시와 마찬가지로 합격률이 낮아 ‘예비시험 낭인’ 양산이 예상된다”고 했다.
한국법조인협회 또한 “변호사 예비시험법은 오히려 기회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법안”이라며 “제도적인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로스쿨 제도를 형해화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사법시험 시절 고졸 합격자는 2006~2014년 3명에 불과했다”며 “반면 로스쿨은 제도 도입 단 6년 만에 정규 교육 과정상 고졸 출신으로 볼 수 있는 방송통신대학이나 독학사 졸업자 변호사를 57명이나 배출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