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명예회장은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업을 공개해 기업을 자본 시장으로 이끌어 내는 역할을 했다. 또 국내 최초로 해외 생산공장을 설립해 세계화를 주도하는 등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질적인 성장 사례를 끊임없이 제시해 왔다.
특히 국내외 정세가 급변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는 다가올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기업체질을 갖추기 위한 경영혁신 활동을 열성적으로 전개했다. 계열사 사장들이 ‘자율과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LG의 ‘컨센서스(Consensus) 문화’를 싹 틔웠고, 또 물건을 만들면 팔리는 시절이었음에도 ‘고객 중심 경영’을 표방했다.
나아가 아예 회사의 경영이념을 고객가치 중심으로 재정립하는 등 구 명예회장의 혁신적인 경영 활동은 재계의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국내 기업들에 경영활동 선진화를 위한 좋은 표상이 됐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과감한 ‘혁신’은 구 명예회장에게 하루도 놓칠 수 없는 경영 화두였고, 경영의 실체였다.
회장직에서 내려오며 남긴 이임사에서도 “혁신은 영원한 진행형의 과제이며 내 평생의 숙원”이라고 강조했고, 은퇴 후에도 경영혁신 활동을 재임 중 가장 큰 보람으로 꼽으며 스스로 ‘혁신의 전도사’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70년대에 잇따른 기업공개로 우리나라 초기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민간 기업의 투명경영을 선도했다.
당시만 해도 기업공개를 기업을 팔아넘기는 것으로 오해해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였고, 일부 임원들은 기업공개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국내 민간 기업에서는 이제까지 기업공개를 한 사례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구 명예회장은 기업공개가 앞으로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 될 것이며,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꺾지 않았다.
그는 독일의 지멘스,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선진 기술과 경영 시스템을 습득할 수 있었고, LG는 세계의 중앙으로 활동 무대를 과감하게 확장시켰다.
대표적인 합작 사례로는 1966년부터 시작된 호남정유와 미국 칼텍스 사와의 합작을 꼽을 수 있다. 50대 50의 대등한 비율로 경영을 양분했음에도 상생과 조화라는 합작의 기본을 존중하고, 원칙을 공정하게 지키면서 한치의 잡음 없이 합작경영을 이어왔다.
1974년에는 금성통신이 외국과의 합작기업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기업공개를 했을 당시, 합작 파트너였던 지멘스 측의 협조가 원활해 언론에서 합작사업의 모범 사례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지멘스와의 합작은 선진기술을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많을 때는 10여 명의 지멘스 기술자가 금성통신에 파견되어 1년 이상 머물며 금형기술을 전수해주었고, 또 가전부문에서도 라디오나 냉장고의 부품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개방과 변혁이 소용돌이 치는 1980년대를 겪으면서 국경 없는 국제 경쟁을 예견하고 깊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그는 스스로 경영혁신 방향 수립을 진두지휘해 1988년 21세기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이라는 변혁방향을 발표했다.
특히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 된 경영체제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구 명예회장이 주창한 “자율과 책임경영”은 고객과 사업을 잘 아는 전문경영인이 권한을 갖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또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고객가치 경영’은 한국 재계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새로운 경영 조류였다.
구 명예회장은 이런 경영혁신 활동이 선언적으로 그치지 않도록 직접 ‘혁신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다. 구 명예회장은 일일이 임직원들을 만나 경영혁신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꼬박 2년에 걸쳐 그룹 전 임원 500여 명과 오찬 미팅을 가졌고, 어느 해에는 1년 동안 현장의 임직원들과 간담회 형태의 대화 자리를 140여 차례나 갖기도 했다.
임직원뿐만 아니라 고객의 목소리도 직접 들으러 나섰다. LG전자의 서비스센터를 비롯해 당시 LG가 사업하고 있던 분야에서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생생한 고객의 목소리를 들었다. 구 명예회장은 현장에 갈 때마다 “고객의 입장에서 듣고 생각하라. 이것이 혁신이다”라는 말을 항상 잊지 않고 강조했다.
그룹 내부에서는 사내 문서의 결재란에 ‘고객결재’ 칸을 회장 결재 칸 위에 만들고, 회의실마다 ‘고객의 자리’를 마련했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고객을 생각하고, 모든 회의에서 고객의 의견을 최고로 존중하겠다는 문화를 만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