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초로 6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한국 경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이 올해 들어서는 단 한 번의 플러스 성적 없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수출과 관련해 ‘상저하고(上低下高)’, ‘V자 회복’을 공언해왔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L자’를 그리고 있다. 이제 관심은 향후 회복 가능성이다. V자는 실패했지만, U자 흐름은 나올 것이냐가 관건이다. 정부는 대외 여건의 우호적 변화와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며 내년 1분기 플러스 전환을 다시 공언하고 있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10월 수출액은 467억8000만 달러를 기록, 작년 같은 달보다 14.7% 감소했다. 수출은 지난해 12월 -1.7%를 시작으로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5년 1월∼2016년 7월까지 19개월 연속 줄어든 이후 최장기간 마이너스 행진이다.
정부는 올해 3~4월께 하반기에는 수출이 회복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수출 성적은 더 나빠졌다. 올해 6월부터 5개월째 두 자릿수 감소율이 계속됐으며 10월 수출 감소 폭은 2016년 1월 -19.6% 이후 3년 9개월 만에 최대치다.
정부는 내년 1분기 플러스 전환을 다시 공언하고 있다. 최악의 수출 성적에도 불구하고 시장 안정화를 위해 한국 수출이 긴 암흑의 터널을 벗어나 점차 회복할 것이라고 군불을 지피고 있는 셈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최근 “미·중 무역분쟁의 1단계 협상 타결 가능성 및 브렉시트 시한 연기와 함께, 우리가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반도체 가격 회복, 수주 선박의 인도 본격화 등이 뒷받침된다면 내년 1분기 수출은 플러스 전환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수출 회복을 자신하는 근거는 우선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최근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수출 물량이 4개월 연속 증가해 실적 개선 가능성을 보인 점은 고무적이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본격적인 5G 통신의 도입과 PC 수요 회복 등으로 인해 침체기에서 벗어나 성장세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단가는 8월 30일 기준으로 PC(제조업체)용 D램은 동결됐고 소비자용 D램은 일부 상승, 전반적으로 메모리반도체 단가가 안정적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 역시 2020년 반도체 시장이 4.8%~10.2% 증가할 것이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호황이 시작된 2017년 수준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으로 증가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수출 주력 품목인 자동차는 신차 출시 효과로 수출이 늘어나고 선박의 경우 국내 기업이 2017년에 수주했던 물량이 내년 1분기와 2분기에 수출로 연결되기 때문에 실적이 본격적으로 잡힐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믿는 구석은 또 하나 있다. 경제지표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기준시점과 비교시점의 상대적인 수치에 따라 그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 기저효과다.
올해 수출 부진은 작년 수출이 워낙 좋았던 탓에 발생한 시각효과가 크다. 올해의 부진한 성적이 내년에는 기저효과 덕분에 플러스 전환을 기대하게 한다. 예를 들어 10월 수출이 전년 대비 14.7%가 감소한 탓에 내년 10월에는 지표가 이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줄어드는 셈이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11월부터 반도체 경기 개선, 물량 회복 등으로 점차 수출 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수출의 양적, 질적 성장을 위해 환율, 유가, 금리 변동 등 단기 리스크에 대응하고 시장 다변화, 소재·부품 고부가가치화, 소비재 및 신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해 수출구조를 혁신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