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십 년간 삼성전자는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삼성전자는 데이터 회사로 변모하고 있다.
석유 자원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제조업 시대를 이끌었다면, 신제조 시대에는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Data is new oil) 역할을 하며 미래 사회 원동력이 될 것이란 게 삼성의 판단이다.
실제로 10년 전에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부터 10위까지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페트롤차이나, GE, BP 같은 석유회사와 은행이 차지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애플,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텐센트처럼 데이터를 만들고 관리하는 회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손영권 삼성전자 사장(최고전략책임자)은 2017년 CEO 서밋에서 데이터 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한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강조하고 있다.
전 세계 갤럭시 스마트폰 사용자는 매일 수많은 데이터를 만들고, 삼성 반도체는 데이터를 옮기고 저장한다. 손 사장은 “전 세계 데이터의 70%가 삼성 제품을 통해 생성되고 저장된다”며 “데이터를 통해 미래 혁신의 물결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 간 인수합병(M&A)한 회사를 보면 대부분 ‘데이터’와 연결돼 있다. 2016년 80억 달러(약 9조3000억 원)에 인수한 하만, 2012년 인수한 사물인터넷(IoT) 업체 스마트싱스, 2015년에 인수한 삼성페이의 원천기술이 된 루프페이, 인공지능 회사 비브랩스 등은 각 영역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만들고 분석하는 핵심 기술을 갖고 있다.
삼성카탈리스트펀드, 삼성넥스트, 삼성벤처투자 등 3개의 사내 벤처캐피털(CVC)을 통해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도 대부분 데이터와 관련이 있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분야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발족한 ‘넥스트 Q펀드’는 지난달 말 양자 컴퓨터 관련 스타트업‘알리오 테크놀로지스’에 투자했다. 양자컴퓨터는 기하급수적이고 규모가 방대해 연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난해한 데이터를 해결할 잠재력을 갖췄다.
신약 및 소재 개발과 관련된 대형 분자 시뮬레이션, 운송 물류에서 효율적인 무역을 위한 최적화 프로그램 설계, 리스크 분석, 날씨 예측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역시 2015년 5월 중국 구이양에서 열린 빅데이터 산업 박람회에서 “세상은 정보통신기술(IT) 시대에서 데이터기술(DT) 시대로 가고 있다”며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윈은 미래엔 가진 데이터로 사회에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내느냐가 중요하다며, 데이터를 활용해 돈을 버는 일이 미래의 핵심가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알리바바가 지난 수년간 온라인쇼핑에서 물류, 인터넷금융, 미디어, 광고 등 다양한 플랫폼 구축에 주력한 것도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베스트 셀러 ‘호모 데우스’는 데이터가 미래 인류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유발 하라리는 우리의 모든 생활과 습관 등은 빅데이터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정리돼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컴퓨터가 되는 시대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인들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보여주는 방대한 개인정보는 데이터화되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은 적합한 제안을 한다. 단지 어떤 제품을 홍보하는 것에서 나아가 데이트 상대를 추천하고 어느 대학에 가서 무엇을 공부하라고 알린다. 졸업하면 직장까지 추천한다.
특히 데이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구제조는 급격히 몰락한다. 예를 들어 A씨가 있다. 그는 하루에 한 시간만 특정 시간에 자동차를 이용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23시간 동안 계속 차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컴퓨터 AI 알고리즘에 의해 운영되는 스마트 카풀 시스템이 탄생한다.
컴퓨터는 A씨가 언제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정확한 시간에 맞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인자동차를 보내준다. 이 무인자동차는 직장에 A씨를 내려준 뒤,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대신 다른 사용자들에게 간다.
이런 식으로 하면 5000만 대의 공용 무인자동차로 10억 대의 자가용을 대체할 수 있다. 도로, 다리, 터널, 주차 공간도 훨씬 덜 필요하게 된다. 하루빨리 신제조로 전환해야 미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신제조 시대에는 수많은 데이터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잘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Data Scientist)의 역할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최대 직장 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가 매년 발표하는 ‘미국 최고의 직업 50’에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1위로 뽑혔다. 래스도어 최고의 직업은 연봉을 비롯해 직업 만족도, 일자리 수 등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11만 달러(약 1억3100만 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 역시 100명이 넘는 데이터 사이언스 조직을 운영 중이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앞으로는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 관리 전문가보다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예측 데이터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형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국내 빅데이터 및 분석 시장도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IT 시장 조사 기관 IDC는 향후 5년간 국내 빅데이터 시장이 연평균 10.9%로 성장해 2022년 약 2조2000억 원의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IDC 도상혁 책임 연구원은 “데이터, AI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과 투자 계획은 향후 국내 빅데이터 분석 시장 성장의 또 다른 주요 성장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