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 사실상 100%…아시아서만 421만 마리 폐사=경기도 파주시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바이러스를 통해 전파되는 출혈성 질병이다. 사람에겐 전파되지 않지만 돼지과 동물이 감염되면 치사율이 100%에 가깝다.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돼지는 고열과 호흡 곤란을 일으키다 20일 안에 사망한다. 야생 멧돼지나 진드기,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물 등이 주요 전파원으로 꼽힌다.
아시아에선 2008년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뒤 몽골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6000건 넘게 발생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폐사한 돼지도 421만 마리에 이른다.
◇스페인선 근절까지 30년 넘게 걸려…‘경제적 손실’ 1조 원 우려도=아프리카돼지열병이 다른 가축 전염병보다 위험한 건 바이러스의 전염력과 생존력이 강할뿐더러 아직 치료제나 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 유입되면 농가에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선 첫 발병 후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근절하는데 30년 넘게 걸렸다. 동유럽에선 박멸에 실패해 풍토병처럼 자리잡았다. 중국 등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 개발을 시작했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로 유입되면 관련 산업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돈 컨설팅 업체인 정P&C연구소는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 돼지 100만 마리가 살처분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조85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돼지 농가 매출 감소 5950억 원, 살처분으로 인한 손실 2500억 원, 사료 판매량 감소 2400억 원 등이다. 특히 한국의 양돈 산업은 농가 밀집도가 높고 사육 규모도 커 가축 전염병 확산에 취약하다. 이형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관측팀장은 “조기 차단에 성공한다면 공급 측면의 산업 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소비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에선 앞으로 1주일간 차단을 막는 게 국내 축산업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본다.
◇북한으로부터 유입 가능성…남북 공조는 추가 진행 없어=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정확한 역학 조사가 필요하지만 방역 당국은 아직 발병 경로를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발병 농가가 방역 시설을 잘 갖추고 있는 데다, 농장 근로자들이 최근에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국을 여행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큰 게 북한으로부터의 유입이다. 북한은 5월 말 북·중 접경 지역인 자강도 우시군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고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보고했다. 추가 발생은 보고되지 않았지만 수의 전문가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북한 전역으로 퍼졌다고 본다.
이번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파주 농장은 임진강의 남북 경계선에선 5~6㎞ 떨어져 있다. 방역 당국에선 북한에서 임진강을 통해 떠내려온 돼지 사체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선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한 남북 공조 필요성도 제기한다.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직후 우리 정부에서 북측에 방역 협력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측은 “내부적으로 검토 후 관련 입장을 알려주겠다”며 석 달 넘게 답을 피하고 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방역 협력 논의가) 추가적인 진행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