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만 있고 채용이 안 돼서 가족 생계를 위해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3년 전 번듯한 직장을 관두고 조종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30대 초반 최기성(가명)씨. 퇴직금 대부분을 투자해 오랜 노력 끝에 조종사 면허를 땄지만 1년째 무직 상태다. 면허를 딴 이후 채용이 계속 되지 않아 가족 생계를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처지다.
조종사 면허를 따고도 항공사 입사를 하지 못하는 조종사 지망생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조종사 면허 획득자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새로운 조종사 선발제도 도입으로 기존 예비 조종사의 자리는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2018년 사업용 조종 면허를 획득한 사람은 1540여 명으로 4년 전인 2014년(860여 명)에 비해 약 80% 늘어났다.
1년 6개월에서 2년가량 교육을 받아야 하고 면허 획득 비용이 1억 원이 넘지만 억대의 연봉과 정년 후에도 계약직으로 수년간 더 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면허 획득을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문제는 항공업계에서의 조종사 수급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국내 항공업계의 조종사 채용 규모는 많아야 한해 300~400명 수준이다.
반면, 한해 조종사 면허를 발급받는 예비 조종사들은 지난해 기준 1500명을 넘었다.
이 때문에 예전처럼 면허를 가진 것만으로는 조종사가 되기 어려워졌고 운항승무원(조종사) 공채를 통해 또다시 다른 지원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여기에 또 다른 악재는 ‘선(先)선발제도’가 생기면서 기존의 조종사 선발 인원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선선발제도란 항공사에서 조종사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항공 관련 역량 테스트(영어면접·운항적성시험 등)를 거쳐 후보자를 뽑은 후 조종사 교육을 하는 방식이다.
조종 면허를 가진 예비 조종사들의 자리가 그만큼 축소된 셈이다.
결국 조종사 지망자 적체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2017년과 지난해에만 2000여 명가량의 예비 조종사들이 날지 못한 채 채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면허 취득 기간이 오래돼 다시 비행경력을 쌓기도 한다. 면허 획득 후 장기간 비행경력이 없으면 면접 시 불이익이 주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행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1시간 비행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만~25만 원 정도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재 업계에서 부기장급 조종사를 많이 뽑고 있음에도 수요·공급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며 “앞으로도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토교통부가 그동안 조종사 양성 사업을 지원해왔다면 앞으로는 해외 일자리까지 마련해주는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