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 삼성의 주력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충격이 가해진 상황에서 삼성은 안팎으로 악재를 맞게 된 것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대법원 판결 이후 임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신사업 등에서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내부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현장 경영’ 행보 및 ‘비상경영 체제’를 차질없이 이끌어간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수사 및 재판과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문도 내놨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저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은 “최근 수년간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왔다”면서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번 삼성의 입장 발표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보통 최종 판결이 나온 시점에 입장을 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삼성은 파기환송으로 아직 재판 절차가 남았는데도 ‘잘못했다.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머리를 숙였다”며 “그만큼 삼성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방증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법원 선고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반성의 뜻을 밝혀 과거의 관행과 잘못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 아울러 국정농단 사건 이후 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새로운 수사를 낳고 수사결과도 나오기도 전에 경영진이 여론재판의 피의자 신분이 돼 리더십이 마비되는 악순환에 대한 답답함과 위기감을 호소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재계는 앞으로 삼성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 등 주요 의사결정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8월 삼성은 ‘향후 3년간 180조 원을 투자, 4만 명 직접 채용을 통한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올해 4월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2030년까지 133조원을 집중 투자, 2030년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삼성은 2017년 자동차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한 후 대형 인수·합병(M&A)을 한 건도 하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본격적인 대규모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이번 판결로 대형 M&A는 또 다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미뤘던 이 부회장의 '글로벌 무대' 복귀는 물론 중요 경영 사안에 대한 결단도 당분간은 보류할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디바이스솔루션(DS) 김기남 부회장, 소비자가전(CE) 김현석 사장, IT모바일(IM) 고동진 사장 등 3명의 대표이사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더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은 실적 악화, 일본 수출 규제, 미중 무역 갈등 격화 등이 겹치는 ‘퍼펙트스톰’을 맞았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도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런 전자 업계의 격랑을 헤치고 삼성전자는 세계 1위로 도약했다. 삼성전자는 ‘위기’를 선제적으로 포착해 기회로 전환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오너의 비전과 경영진의 실행력, 직원들의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이라는 삼성 고유의 ‘핵심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실적 악화와 수출 규제, 무역 갈등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오너의 비전과 경영진의 실행력, 임직원들의 도전정신이 필요하지만 수사와 압수수색 등으로 모두가 위축돼 있다는 게 삼성 내부의 판단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으로선 리더십 위기 등으로 3년여 시간 동안 미래 준비를 못 했는데, 더 이상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절박감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