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이 7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그는 포항종합제철 창립 멤버로 오늘날 포스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2년 경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북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11년간 대한중석에서 근무하다가 1968년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 이끌려 포항제철에 창립 요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롬멜 하우스'로 불렸던 경북 포항시 영일만 해변 제철소 공사 현장의 건설사무소에서 숙식해가며 '실패하면 모두 영일만에 빠져 죽는다'는 각오로 철강업체 포스코의 토대를 닦은 창립 멤버 21명 가운데 한 명이다.
고인은 16년간 포항제철에서 기획실장, 설비기술본부 부본부장, 판매·인사 담당 상무이사 등의 중책을 두루 맡았다.
1983년에는 포항제철 도쿄사무소장으로 주재하면서 박태준 회장으로부터 광양제철소 건설에 일본 철강업계와 정계의 협조를 받아내라는 지시를 받는다.
당시에는 "일본의 기술협력으로 힘을 얻은 한국 철강업계가 오히려 일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일본 철강업계의 인식이 강해 지원을 받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인은 이나야마 요시히로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을 설득한 끝에 일본 철강업계의 협력을 끌어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광양만에 제2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할 수 있었다.
아울러 고인은 아버지 장영모 전 의원과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서 양조장 사업을 함께 했던 인연을 바탕으로 이병철 회장과 박태준 회장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일본 철강업계가 광양제철소 건설을 지원하는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병철 회장과의 교분으로 고인은 1985년 삼성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겨 기계·특수부문 부사장과 사장을 지냈다. 1989년에는 삼성그룹 일본 총괄 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포스코와의 인연 또한 이어갔다. 삼성중공업이 광양제철소 설비 제작과 설치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후 고인은 1991년 몸담았던 포항제철로 다시 돌아와 사장 대우와 회장 특별 보좌역으로 근무했다.
1994년에는 고려제강의 고문을 맡았고, 1999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으로 취임해 4년간 회장직을 수행했다.
고인은 포스코의 초석이 된 인물들을 다룬 '쇳물에 흐르는 푸른 청춘'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포스코는 내 인생의 영원한 자부심이며 긍지"라고 회고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일 오전 9시다. 장지는 충남 천안시 천안공원묘원으로 정해졌다.
유족으로는 아들 장재철 에이엠피컴퍼니 대표와 딸 장현주·은영·혜령 씨, 사위 김찬식 벽산 부사장과 박상욱 서울대 자연대 교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