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본부장은 23일 닷새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반도체 원자재 수출 규제 등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미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본격화하자 유 본부장의 방미를 추진하며 미국의 중재를 요청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달 중순에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 등 차관급 고위관료를 잇따라 미국에 파견했다.
유 본부장은 출국에 앞서 "일본의 수입규제 조치에 대해서 정부에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일환으로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고자 한다"며 "미국의 경제통상 인사들을 만나서 일본의 (수입 규제) 조치가 미국 기업 또는 미국 기업뿐 아니라 세계 글로벌밸류 체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적극 설명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워싱턴 D.C.에서 미국 행정부와 의회, 싱크탱크 등의 고위급 인사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유 본부장은 구체적인 접촉 인사에 관해선 "조율 중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확정적으로 말씀드리지 않겠다. 경제·통상 관련 다양한 인사들을 만난다는 점만 말씀드린다"고 함구했다. 산업부에서도 일본에 전략이 노출될 것으로 우려해 구체적인 일정 공개를 꺼리고 있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통상장관인 유 본부장) 급(級)에 막는 고위급 인사들이다"고 언급했다.
다만 유 본부장의 방미가 한일 중재에 소극적인 미국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유 본부장에 앞서 미국을 찾은 김 차장과 윤 조정관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귀국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일 양국의 요청이 있을 때야 개입한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간) "양국 요청이 있으면 돕겠다. 그들(한국과 일본)이 해결할 수 있길 바라지만 원한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라는 모호한 입장을 내놨다.
유 본부장은 이 같은 우려에 "미국의 역할이나 미국 정부의 역할 정도에 대해서 언급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그동안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제분업체계 하에서 각국이 세계 경제 발전에 기여해왔는데 일본의 이번 조치는 이러한 국제분업체계를 흔듦으로써 그 영향이 한국기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기업, 나아가 세계 주요기업들, 각국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유 본부장을 포함해 산업부 통상라인 고위 관료들은 한일 외교전을 위해 이번 주 잇따라 해외로 향하고 있다. 산업부 안에선 이번 주가 한일 외교전의 고비가 될 것이란 평가가 많다. 유 본부장도 "굉장히 중요한 주간"이라고 말했다.
22일엔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23~24일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떠났다. 통상 주 제네바 대사가 참석하는 WTO 이사회에 정부 중앙부처 실장급 고위관료가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정부에서 일본 수출 규제에 맞서기 위한 국제 공조 필요성을 절박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 실장은 "일본의 조치는 통상 업무 담당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상당히 무리가 많은 조치다"라며 "일본의 주장에 대해 준엄하지만 기품있게 반박하겠다"고 말했다.
여한구 통상교섭실장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을 위해 24일 중국으로 출국한다. 산업부는 여 실장과 일본 대표단과의 양자 회동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