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마차가 주를 이뤘던 1차 대전과 달리, 2차 세계대전은 이동수단을 앞세운 갖가지 기동전술이 전장의 성패를 갈랐다. 동시에 군용차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수백 개의 자동차 회사가 이때 생겼다. 비행기와 열차, 배를 만들던 회사들이 서둘러 군용차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자 이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거대한 수요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2차례 세계대전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자동차 회사들의 외연도 바뀌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졌으나 스웨덴 사브는 자동차보다 전투기로 유명했다. 독일 BMW 역시 앰블럼(비행기 프로펠러 모양)에서 알 수 있듯 비행기를 만들던 회사였다. 슈퍼카 메이커 람보르기니의 출발점은 트랙터였고, 일본 토요타는 방직기계를 만들던 회사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자동차 회사는 차 이외에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고 있다. 모터사이클로 이름난 일본 혼다는 자동차를 만들다 요즘은 로봇과 비행기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크라이슬러는 여전히 모터보트 브랜드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일부는 브랜드 가치 또는 기업이 추구하는 지향점을 강조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다. 자동차 회사가 만드는 색다른 아이템을 살펴보자.
이곳 레스토랑에 가면 폭스바겐이 만드는 소시지도 판매한다. 폭스바겐은 매년 700만 개 이상의 소시지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2차 대전 당시 공장 노동자들의 점심을 위해 소시지 납품사를 인수했는데 이후 폭스바겐 로고를 붙여 판매 중이다. 물론 대형마트나 슈퍼에서도 폭스바겐 소시지를 살 수 있다. 커다랗고 동그란 소시지를 잘라보면 동그란 단면에 폭스바겐의 VW마크(치즈)가 새겨진 제품도 있다.
“자동차 회사가 신기하게도 소시지를 만들어 팔고 있군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되묻는다. “현대자동차는 아파트(건설)도 짓는데 소시지가 왜 이상해요?”
단순하게 외주사에서 벌꿀을 사들여 로고만 붙이는 게 아니라 포르쉐가 직접 거대 양봉장에 약 300만 마리의 꿀벌을 키우는 중이다. 매년 약 3톤의 독일 토종(?) 벌꿀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양봉업자로 나선 포르쉐는 “날이 갈수록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는 꿀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며 배경을 설명한다. 포르쉐가 직접 생산한 벌꿀은 본사인 라이프치히 고객센터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작은 병 하나에 가격은 약 8유로다.
탄소섬유를 사용한 외관 디자인은 람보르기니의 핵사곤(6각형) 분위기를 담은 게 특징. 앰블럼 역시 람보르기니의 것을 고스란히 옮겨 달았다.
무엇보다 람보르기니의 기념비적 모델인 ‘아반타도르’의 배기 파이프를 덧댄 점이 눈길을 끈다. 스피커 전원 버튼 역시 아반타도르의 육각형 푸시 타입 시동버튼으로 꾸몄다.
기능과 스피커 성능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인데 가격만큼은 람보르기니라는 이름에 모자람이 없다. 스피커 하나에 우리 돈 약 2500만 원. 웬만한 중형차 값이다.
반면 스포츠 브랜드와의 컬래버를 통해 드라이빙 전용 슈즈를 개발한 것은 맥락이 다르다. BMW는 2016년 드라이빙에 최적화된 운동화 ‘X-CAT DISK’를 선보였다.
스포츠 용품 전문기업 퓨마와 협업했는데 운동화는 퓨마가 만들고 디자인은 BMW가 맡았다. 색깔과 전체 모양새는 BMW 콘셉트카 ‘지나(GINA)’에서 영감을 얻어왔다. 신발 중앙에 있는 디스크를 돌리면 신발끈을 단단히 조일 수 있다. 나아가 특수 소재를 사용해 가볍고 착용감이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푸조는 1810년 생활용품을 시작으로 기업을 꾸렸다. 철제 농기구를 시작으로 금속 가공업에 뛰어들었고 커피 그라인더와 다양한 주방용품을 개발해 판매했다.
여전히 프랑스에서는 푸조가 만드는 주방기기들이 팔린다. 대표적인 제품이 후추 그라인더. 최근에는 트렌디한 디자인의 세련된 후추 그라인더를 판매하고 있으나 여전히 인기가 높은 제품은 원목으로 만든 전통적인 푸조 후추 그라인더다. 가격은 20유로(약 2만5000원) 정도다. 프랑스에는 자동차를 만드는 PSA 푸조와 후추 또는 커피 그라인더를 판매하는 PSP 푸조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