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불 났는데 경기도 남양주에 물을 뿌리는 식의 3기 신도시 정책은 백지화해야 한다.”
16일 오전 10시 남양주시 종합운동장 체육문화센터 실내체육관에서 ‘남양주왕숙 공공주택지구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 설명회’가 열렸다. 14일 또 다른 3기 신도시인 인천 계양 설명회는 주민들의 반발로 시작도 못 하고 무산된 바 있다.
주민들은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실내체육관에 하나둘씩 모였다. 왕숙지구 주민대책위원회뿐만 아니라 왕숙2지구, 다산신도시 대책위 주민들도 체육관에 모였다.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빨간색 조끼를 착용한 대책위는 ‘주민생존권 국토부장관 남양주시장 책임져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패널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일반 주민들도 설명회에 관심을 갖고 현장을 찾았다.
이원근 왕숙지구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은 남양주 왕숙지구의 절반 이상이 GB환경평가등급 1ㆍ2등급인 만큼 3기 신도시를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준비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보면 남양주 왕숙의 GB등급별 비율은 1등급 6.1%, 2등급 46.8%, 3등급 47.1%로 나와 있다.
이 사무국장은 “2020년 수도권 광역도시계획, 9ㆍ13 부동산 대책, 9ㆍ21 부동산대책 등에 따르면 그린벨트 보존가치가 낮은 환경평가등급은 3~5등급으로 판단된다”며 “이에 왕숙지구의 경우 보존가치가 높은 그린벨트 환경평가등급 1ㆍ2등급 약 53%는 주택지구로 지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이 없는 서울 사람들 때문에 지난 50여년간 그린벨트 지정으로 재산상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묵묵히 정부의 그린벨트 정책에 협조했던 남양주 왕숙지구 주민들이 왜 희생돼야 하냐”며 “서울에서 불 났는데 남양주 왕숙지구에 물을 뿌리는 3기 신도시지정 정책은 백지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설명회를 지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행사는 결국 20분 만에 중단됐다. 설명회가 끝나자 객석에 있던 주민들의 반발은 더 거세졌다. “물러가라”는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은 급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50대 주민은 “신도시가 들어서면 외부 투자자들만 좋을 뿐 우리 같은 원주민들은 갈 곳이 없다”며 “중요한 정책을 사전에 주민 의견 청취도 없이 기습적으로 발표하는 게 말이 되냐”고 토로했다.
이종익 왕숙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교통문제, GB해제 부당성, 하수처리 문제가 가장 크다”면서 “600쪽이 넘는 초안서를 공람하라는데 이는 주민들이 정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대석 왕숙지구 진접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표준지가 기준으로 보상한다고 하는데 개발이익을 토지주가 못 받는 게 말이 되냐”며 “이건 현 정부가 얘기했던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일부 주민들은 설명회가 무산된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설명을 듣고 싶은 주민들도 있는데 다수의 반대로 무책임하게 설명회를 끝내는 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접읍에서 온 한 주민은 “이걸(반대 문구가 적힌 패널)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설명을 들으러 왔다”며 “국토부, LH 직원들도 이렇게 무책임하게 설명회를 끝내면 어떻게 하냐”고 지적했다.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주민도 “왕숙지구에 갖고 있는 땅이 있어 설명회를 들으러 왔는데 설명회가 시작도 못 하고 끝나 황당하다”고 말했다.
LH 측은 설명회 재개와 관련해 “국토부와 상의해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