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9일 자산규모 기준 해외 5대 연기금을 대상으로 지배구조와 의결권 행사 방식 등을 비교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이사회나 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했고, 나머지 해외 연금들은 기금운용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일본 GPIF, 캐나다 CPPIB, 미국 캘퍼스(CalPERS), 네덜란드 ABP 등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해당하는 의사결정기구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다. 위원장도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들이 맡는다.
기금운용위원회가 보건복지부에 소속되어 있고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 기금운용委에 현직 장·차관 참여, 국민연금만의 특징 = 기금운용이사회 구성에서도 국민연금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GPIF, CPPIB, ABP 등은 이사회 내에 정부인사가 전혀 없고 모두 경제·금융, 연기금 전문가이거나 기금을 조성하는 사용자·노동자 대표로 구성된다.
미국 캘퍼스는 주공무원과 교육공무원들을 위한 직역연금이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로서 주정부인사 4명이 당연직으로 참가한다.
나머지 위원 6명도 가입자들의 선거로 선출되므로 독립성 확보가 가능하다.
이와 달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 20명 중 5명이 현직 장·차관이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당연직으로 참가, 기금운용 결정 과정에서 정부 입김을 배제하기 어렵다.
◇ 해외 연기금들, 의결권행사 외부에 위임 =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주총부터 경영 참여를 본격화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배구조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는 만큼 3월 주총에서 정부 간섭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달리 ABP, CPPIB, 캘퍼스 등은 자체 의결권 행사지침을 마련한 뒤 외부 전문기관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한다.
일본 GPIF는 의결권뿐만 아니라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모두 위탁운용사에 위임했다.
이들 위탁운용사들은 자체적으로 의결권 행사기준을 정한 뒤 의결권 행사 결과를 GPIF에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 국내 증시에 막대한 영향력…국민연금의 지주회사化 우려 = 국민연금의 자산 내 주식보유 비중은 작년 기준 34.8%이며 이중 절반이 국내주식인데 액수로 109조 원에 이른다.
이는 시가총액의 7%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자칫 정부의 간섭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구조이다.
네덜란드 ABP와 캐나다 CPPIB는 국내주식 보유 비중이 각각 0.5%, 2.4%에 그친다.
일본 GPIF는 국내주식 비중이 25.3%로 국민연금보다 높지만,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과도한 기업경영 개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GPIF의 주식 직접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 캘퍼스는 국내주식 보유 비중이 국민연금과 비슷한 17.7%이나 미 중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하다.
◇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로 기금 고갈 위험 막아야" = 해외 연기금들은 기금운용 과정에서 독립성이 훼손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뒀다.
캘퍼스는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기금을 이용해 재정적자를 해소하려 하자 1992년 칼리포니아주 헌법을 개정, 기금운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
캐나다연금 역시 90년대에 정부의 과도한 간섭으로 기금 고갈 위기를 맞자, 1998년에 별도의 공사인 CPPIB를 설립해서 완전히 독립된 지배구조를 확보했다.
네덜란드 ABP는 1922년 설립 당시 기금운용위원회가 내무부장관 지배를 받는 구조였으나 1996년에 독립자회사 형태로 민영화시켜 기금을 독자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2016년 GPIF가 주식을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정부의 경영 간섭 및 시장 왜곡 우려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법개정이 무산되었다.
현재 GPIF는 정부로부터 기금운용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아 독립적으로 운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