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법, 입법 그리고 자유’

입력 2019-03-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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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입주의의 덫’ 헤어나게 할 등불

날로 빨라지고 가벼워지는 시대에 묵직한 책을 읽어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갖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지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 젊은 날 세계관을 정립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 작가가 자유주의 사회철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이다. 그의 주옥같은 저서들 가운데 도전해 볼 만한 책이 ‘법, 입법 그리고 자유’이다.

그동안 3권의 낱권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선보인 것들이 한 권으로 깔끔하게 묶어져 새로 출간됐다. 무엇보다도 오늘날처럼 입법이 성행하는 시대에 이 책은 나라의 앞날에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부 개입주의와 민중주의의 영향력이 날로 드세어지는 이 시대에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미약하나마 등불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의 끝에 소개된 하이에크의 ‘인간 가치의 세 가지 근원’이란 짧은 논문은 젊은 날의 필자에게 반듯한 세계관의 정립이란 선물을 안겨준 기념비적인 논문이다.

이 책은 어떤 사회가 자유 사회로서 계속해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시민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사회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 즉 사회과학의 진리를 예리하게 다룬 책이다. 하이에크는 서문에서 “모든 사회제도는 용의주도한 설계의 산물이고 또 산물이어야 한다”는 가정에 바탕을 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가 사실로 보나 규범으로 보나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것인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정부 개입주의의 거센 파고 이면에 놓여 있는 것이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이다.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훈련된 정치인이나 정책가들의 지적 토대에 대한 예리한 이해와 시시비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보석 같은 책이다.

하이에크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에 대항해 자신의 사회철학이 ‘진화주의적 합리주의’라 부른다. 그는 궁극적으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도나 정책들은 어떤 식으로 포장되든지 근원을 따져보면 두 가지 사이에 어느 하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모든 문제에 대해 정책을 통한 성급한 정부 개입주의의 근거도 모두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한국에서 나서 자란 다수의 사람은 이 같은 지적 전통이나 관습 그리고 분위기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진화주의적 합리주의에 체계적으로 노출되는 일은 정규 교육을 받고 있는 과정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쉽게 이뤄지기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정치적 차이들은 궁극적으로 두 사상 학파 사이에 있는 일정한 기본적, 철학적 차이들에 있다”는 하이에크의 주장은 표면이 아니라 그 아래를 바라보면 볼수록 진실이다. 또한 그는 “만일 구성주의적 합리주의가 사실 면에서 그릇된 가정들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 과학적 사상학파들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사상 학파들 전체도 또한 오류투성이임이 입증될 것이다”고 뚜렷하게 주장하고 있다.

권력자의 지적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너무 많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하이에크의 주장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이론적 분야에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특별히 법실증주의이고 그리고 이와 연결돼 있으면서 그 오류와 생사를 같이 한 무제한적인 ‘주권자’ 권력의 필요성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이것을 해야 하고 저것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너무 팽배해 있는데, 이런 현상의 바탕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규칙과 질서, 사회적 정의의 환상, 그리고 자유 사회의 정치질서라는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독자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연령 고하를 막론하고 도전해 볼 만한 최고의 지적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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