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가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기업을 규제하는 입법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달라고 국회에 건의했다. 구조적으로 하향 추세에 있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선 이미 선진국 수준의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과감한 규제 개혁을 통해 혁신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의 과감하고 자유로운 혁신활동과 신산업 육성을 위한 입법을 지원해달라며 ‘주요 입법현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담은 상의리포트를 3일 국회에 제출했다. 상의리포트는 주요 경제현안과 입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서로, 국회-경제계간 소통 강화를 위해 지난 2016년부터 제작됐다.
◇"상법 개정안, 투기 세력 공격수단 될 수 있어"=대한상의는 상법, 공정거래법, 복합쇼핑몰 관련 규제 등의 3개 법안에 대한 ‘신중 검토’를 요청했다.
우선 대한상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이미 선진국 수준인 제도를 강화하기보다는 시장 감시에 맡기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상의는 “현행 기업지배구조 관련제도는 선진국 수준이거나 그 이상인 상태로, 해외입법사례를 찾기 어려운 제도를 섣불리 도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며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보다는 현 제도를 잘 작동시키는 방법을 고민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해외사례를 보면 주주권을 제한하면서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의무화한 나라는 사실상 없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곳도 선진국에는 없고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상의는 “2~3대 주주나 해외투기자본들이 이사회에 진출해 회사를 압박, 부당한 이득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며 “투기자본에게 공격 수단만 더 쥐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안은 주주기본권과 주식회사제도의 기본원칙인 1주 1의결권 원칙에도 어긋난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단기실적주의와 배당우선주의 등으로 미래수익창출을 위한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에 대해서도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는 공정위와 검찰 간 이견발생시 조정방안과 고발남용 방지책 마련을 건의했다. ‘정보교환행위 담합 규제’는 기업들이 위법성 여부를 사전에 알 수 있는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는 제도 또는 정책 목표간 상충 문제도 지적했다. 지주회사는 본질적으로 자회사 지분 보유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번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지주회사의 자회사까지 확대 적용키로 한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장려해야 할 공인법인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고, 대주주의 편법 지배력 확대 소지가 없는 경우까지 과잉 규제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복합쇼핑몰 규제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검토 후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국회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수퍼마켓(SSM)에 적용 중인 월 2회 의무휴업일을 복합쇼핑몰에도 확대·적용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대한상의는 “복합쇼핑몰과 전통시장·소상공인은 주업종이 달라 경쟁관계가 크지 않다”며 “복합쇼핑몰 규제는 입점상인, 주변상권,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 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 노사합의 아닌 객관적 지표 기반으로 결정해야"=이날 대한상의는 최저임금법·규제개혁·서비스산업 육성에 관해서는 입법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상의는 최저임금법에 대해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 자체를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객관적인 지표에 기반하는 결정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독일, 프랑스 등은 전문가그룹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산식에 따라 최저임금의 인상구간을 정하고 노사는 제시된 구간 내에서 협의를 진행, 정부가 이에 기반에 최저임금을 최종 결정하고 있다.
상의는 “현행 최저임금인상률은 노사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과정에서 노사갈등과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며 “객관적 지표와 산식을 통해 예측가능한 결정구조로 바꿔야한다”고 밝혔다.
또한 대한상의는 규제혁신 5법 가운데 아직 계류 중인 2개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규제혁신 5법은 신산업 규제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올해 3월 발의한 △행정규제기본법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융합법 △지역특구법 제·개정안이다.
대한상의는 “혁신기반 재구축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규제개혁”이라며 “행정규제기본법과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조속히 입법해 혁신의 터를 마련해줄 것”을 건의했다.
아울러 국회에서 7년째 계류중인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도 조속한 입법을 요청했다. 대한상의는 경제구조 선진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서비스산업 발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모든 서비스분야를 기본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법안 취지에 부합한다"며 "국민보건 증진 제한, 안전생명 위협하는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별도의 점검장치나 규제를 따로 두는 방식으로 절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박재근 대한상의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규제 허들(hurdle)이 여전한 가운데 글로벌 기준보다 더 높게 기업책임을 요구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계류돼 있다”며 “기업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제 도입보다는 시장규범이 잘 작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