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들어가는 글: “제조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4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제1회 ‘메이커 페어’를 열며 강조한 말이다.
‘메이커’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제작과 판매의 디지털화를 이끄는 스타트업을 통칭한다. 이 같은 메이커들은 실리콘밸리의 씨앗이 됐다. 오바마 정부는 국가 경쟁력을 이끌어갈 주체를 메이커 기반의 스타트업이라고 믿고 이들을 지원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혁신 성장’도 중소·벤처기업이 중심이다. 성장의 주체가 더는 대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경쟁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성장의 기회가 많아졌다고 해서 그 결실이 확대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을 개발해 내도 규제에 가로막혀 주저앉는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 기존 법 체계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낸 스타트업은 지난한 인증 과정에 피로도를 느낀다. ‘제조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음에도 혁신 성장은 아직 요원한 이유다. ‘이투데이’는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들을 인터뷰해 혁신 성장의 거리를 함께 좁히고자 한다.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가면 휠체어를 밀어주는 보호자를 배려하느라 보고 싶은 곳을 마음껏 보기 어려워요. 차에 싣기 힘든 전동휠체어로 여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수동 휠체어에 전동 키트를 장착하고자 하는 휠체어 사용자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심재신 (43) 토도웍스 대표는 휠체어 사용자들의 이동권을 이야기할 때 눈을 반짝였다. 그는 자사의 제품을 설명할 때 보다 고객들의 변화한 일상을 말할 때 더 신나 보였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착한 기업인 토도웍스의 대표 심 씨를 8일 경기도 시흥에 있는 토도웍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심 대표는 2015년 여름, 처음으로 휠체어를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됐다. 초등학생 딸아이 덕이었다. 딸아이의 친구가 휠체어를 타고 집에 놀러 왔는데 그 아이가 자주 오지 못하는 이유는 수동휠체어의 이동성 때문이었다. 하교 뒤에는 수동휠체어를 타는데 아이가 수동휠체어로 혼자 밖에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대기업에 자동화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 중이던 심 대표는 그 자리에서 “아저씨가 휠체어에 모터 달아줄게”라고 약속했다.
4개월 뒤 심 대표는 약속을 지켰다. 제품이 만들어지고 입소문이 나면서 “나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심 대표가 장애 용품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다. 그 다음 해인 2016년 3월에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크라우드펀딩에 나섰다. 목표 금액이었던 1000만 원을 초과한 1118만 원을 모았고, 하루에 전화가 200통이 올 정도로 문의가 빗발쳤다. 이후 2016년 7월 지금의 토도웍스를 설립했다.
수동휠체어를 전동휠체어로 바꿔주는 토도웍스의 파워 어시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장 가볍다. 보통의 파워 어시스트가 20~30kg인데 반해 토도드라이브는 4.5kg이다. 2016년 11월부터 정식 판매해 국내에서는 2000대가량이 팔렸다. 미국, 유럽 등 10개가 넘는 국가의 업체와 수출 계약도 체결했고, 독일 국제재활 및 실버제품전시회 ‘레하케어(REHACARE)’에는 2년 연속 참가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토도웍스는 국내에서 의료기기로 품목 인증을 받지 못했다. 현행법상 분류 항목이 없어서다. 심 대표는 “국내에 휠체어 품목은 수동과 전동밖에 없다”며 “식품의약안전처(식약처) 인증을 받으려면 인증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시험 항목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기기로 인증을 받아야 소비자가 보험 수가를 받아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며 “의료기기가 아닌 의료보조기기로라도 정확하게 분류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토도드라이브는 176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 비용을 고스란히 구매자가 부담해야 한다. 정성환 토도웍스 사업본부장은 “유럽에서 판매되는 파워 어시스트를 보면 6000유로가 넘는 제품도 많은데 보험 적용이 되니까 예컨대 독일 국민은 10유로만 내고 살 수 있다”며 “독일 레하케어 전시회 때 보니 사람들이 부담 없이 타고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만든 제품은 토도드라이브랑 비슷하지만 더 무거운데도 정부에서 1년에 500대 이상 무상 보급한다”며 “프랑스에 있는 파트너 말로는 인증만 통과하면 1년에 1000대 이상 팔릴 것으로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정 본부장은 토도웍스가 직면한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본의 아니게 ‘규제 전문가’가 됐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7월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주관한 ‘규제개혁 끝장캠프’에 참석한 이후 식약처와 회의를 성사할 수 있었고, 어떤 시험 항목들을 거칠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쉬움은 남아있다. 인증이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 본부장은 “사업에서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과정이 오래 걸리는 것은 그렇다 쳐도 예측 불가능한 점은 업체를 힘들게 한다”며 “영업 때문에 지방에 출장을 가면 176만 원이라는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고객들이 있고, 저희로서는 보험 수가를 받는 시점에 대해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런데도 힘든 점보다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이 더 크다고 심 대표는 밝혔다. 심 대표는 “도움을 받던 장애 아이가 토도드라이브를 만난 뒤부터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로 바뀌는 모습을 본다”며 “장애아동 1명이 비 장애 아동 10명의 생각을 바꾸는 셈”이라고 말했다.
심 씨는 토도웍스가 사물인터넷(IoT) 업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올해 12월에는 휠체어가 넘어졌을 때 보호자 휴대전화를 알림이 가는 소프트웨어를 론칭할 예정이다.
얼마 전 SK행복나눔재단, 고려대 의과대 등과 함께 한 장애 아동의 이동권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도 계속할 예정이다. 장애 아동 80명에게 휠체어와 토도드라이브를 제공한 ‘세잎클로버 플러스’ 프로젝트는 휠체어 전용 교육장을 갖춘 토도웍스 사옥에서 이루어졌다. 심 대표는 “2기, 3기가 꾸준히 나올 것”이라며 “국내에 휠체어를 탄 아동 최소 2000명에게 토도드라이브를 지급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장애에 갖는 편견이 바뀌어야 사회 전반에 깔린 편견도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