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현재, 이들 경제단체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장 기업들은 경제단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단체들이 여전히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며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에 재계 양대 축으로 거론되는 대한상의와 전경련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경제단체의 현재 상황에 대해 짚어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 위상 달라진 대한상의-전경련 = 재계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을 ‘경제5단체’로 지칭한다. 설립 연도는 각기 다르지만 1960년대 이후 이들 단체들은 각자 영역을 나눠 민간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각각 영역이 구분된 만큼 이들 단체의 서열을 나누지는 않았으나 암묵적으로 전경련을 ‘제1단체’로 인정해 왔다. 전경련은 앞서 언급한 대로 1960~1970년대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 정책 제시와 함께 기업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대표 경제단체로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 노력을 기울이며 재계 맏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전경련의 이 같은 영향력은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최종현 SK그룹 회장 등 ‘스타급’ 총수들을 배경으로 전경련은 상당 기간 전성기를 구가했다”며 “한때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장관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전경련의 영향력은 막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6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등에 연루되며 전경련의 위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017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와 엮이면서 전경련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한때 존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전경련은 생존을 위해 과감히 ‘변화와 혁신’을 선택했다. 뼈를 깎는 반성과 쇄신에도 나섰다. 그럼에도 전경련이 과거와 같은 위상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경제 정책 및 사회적 주요 어젠다와 관련해 적극 목소리를 내며 나름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기업들 “경제단체들, 목소리 더 내달라” = 전경련이 맡았던 ‘제1단체’ 역할은 대한상의가 대신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재계의 소통창구 역할을 자처하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만 과거 전경련이 주도권을 잡았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태생이 다른 탓이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주도로 창설된 전경련은 일본의 게이단렌(經團連)을 모델로 삼았다.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반면 1884년 설립된 한성상업회의소를 모태로 하는 대한상의는 지역 상공인들이 주축이 돼 지역 조직을 만들고, 중앙 조직을 만들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ㆍ중소기업 모두를 회원사로 두고 있어 특정 기업군에 집중하기보다는 기업 환경 전반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에 재계에서는 대한상의가 대기업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대한상의는 이에 대해 “우리는 단순히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경제 현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기업의 지속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개혁을 추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대한상의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 등 기업들을 대신해 각종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국 문제는 전경련뿐만 아니라 경총까지 내홍을 겪으면서 경제단체들의 위상 하락이 전반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 경제단체들은 과거와 같이 경제 현안 등에 대해 공동 대응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단체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업무 영역이 중복되는 경제단체가 난립하다 보니 효율성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일부 경제단체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이에 경제단체를 통폐합하거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상공회의소로 경제단체가 일원화돼 있는데, 일본은 4개였던 경제단체를 3개로 줄였다”면서 “그러나 한국은 5~6개에 이르는 경제단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일부 경제단체의 경우 각각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외국의 사례를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오히려 기업의 소통창구가 단일화할 경우 조직이 비대해질 수 있으며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이어 “기업은 더 이상 정책의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라, 정책 과정의 주요 활동자와 주체가 돼 가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기업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경제단체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