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업계에 따르면 사무직군의 주 52시간 근무는 조직원끼리 눈치 보기 바쁘던 시행 초기보다 많이 개선된 상태다. 식품업체 사무직으로 근무 중인 A 씨는 이제 5시 퇴근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는 “4시 반에 타 부서에서 요청 온 업무량이 많을 경우 야근 대신 다음 날로 넘기겠다고 보고한다”며 “이런 분위기가 최근 들어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야근 대신 칼퇴근이 자리 잡으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선 취미 생활도 관심거리다. 이마트는 19일부터 모집 중인 문화센터 가을학기에 워라밸을 위한 직장인 강좌를 대폭 증설했다. 저녁 강좌를 30% 늘리는 한편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한 이색 취미 강좌와 ‘워킹 맘 & 대디’를 위한 육아 프로그램도 강화했다. 이와 함께 ‘워라밸’ 코너를 별도로 구성해 해당 강좌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주 52시간을 맞아 퇴근 이후 저녁 있는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장인을 위한 취미 및 저녁반 수업 비중을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
사무직군의 삶이 이처럼 여유를 찾은 반면, 판매직군은 상황이 다르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 연이은 이슈 속에서 12일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일주일 중 단 하루라도 정기휴무일로 지정해 알바비 부담 없이 쉬고 싶다”고 호소하는 한 쇼핑몰 판매직의 글이 올라와 4000건이 넘는 공감을 얻기도 했다.
청원 글 속의 상황은 실제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 송파구의 한 백화점에서 의류 판매를 하는 B 씨는 지난해 추석과 설에 각각 하루만 쉬고 근무했다. 그는 “편의점이나 골목시장은 보는 눈이 많아 이슈의 중심이 된다. 하지만 쇼핑몰 등의 입점주에 대해선 아무도 생각해 주지 않는다”며 “편의점주나 골목상인에 대한 이슈도 중요한 걸 알지만, 우리도 유통법 개정으로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구리시의 한 아웃렛에서 근무하는 C 씨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 아웃렛은 한 달에 한 번 휴무하는데, 그는 “한 달에 두 번 쉬고 싶다. 복합몰 규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지만 판매 현장은 매출도 안 나오는데 사람만 죽어간다”고 호소했다.
앞으로 근로 시간 단축이 확산할수록 업계 종사자 간 심리적인 양극화는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종전의 대형마트 이외에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에 대해서도 월 2회 의무휴업 지정을 골자로 한 유통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다만 7월 헌법재판소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규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유통법 개정안 통과도 속도를 낼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