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서울을 뒤덮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을 찾았다. 불볕더위 탓인지 무너져가는 집 때문인지 장진철 사직제2구역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이하 ‘사직2구역조합’)조합장 직무대행의 미간엔 주름이 가득했다.
이날은 마침 서울고등법원이 사직2구역 조합의 손을 들어준 날이었다.
사직2구역 조합이 서울특별시장, 종로구청장을 대상으로 낸 조합설립인가 취소처분 집행정지 소송에서 ‘효력 정지’ 결정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고법은 “신청인(사직2구역 조합)에 대하여 한 조합설립인가 취소처분은 사건(정비구역 직권해제 취소)의 판결 선고시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정비구역 직권해제 취소 소송은 조합이 1심에서 승소했다. 서울시가 항소하면서 2심을 앞두고 있다. 2심 첫 번째 기일은 다음달 27일이다.
사직2구역 조합은 주민들이 직접 나서 꾸려졌다. 지난 2003년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으면서 살기 좋은 동네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를 꿈꿨다.
2009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2012년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한양도성 보존을 이유로 인가를 보류했다.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조합은 이 무렵부터 서울시와 씨름 중이다. 종로구 상대로는 부작위행정소송을 신청해 2년 전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후 서울시가 계획했던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등재도 무산됐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작년 3월 실사한 결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서울시는 조합인가 취소 후 6개월 이내에 ‘사용비용 보조금’을 신청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고, 조합은 작년 9월 보조금 항목에 따라 120억 원을 신청했다. 그동안 조합에서는 340억 원 가량의 비용이 발생했다. 롯데건설에서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전 조합사무실로 사용했던 선교사 부지를 230여억 원에 사들이면서 그나마 비용을 충당했다.
조합 관계자는 “보조금을 조합인가 취소 후 6개월 이내에 하지 않으면 조합 스스로 보조금을 포기한다고 간주한다는 얘기를 듣고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번 조합인가 취소 보류 결정이 난 만큼 보조금 절차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결정문을 아직 받아보지 못했고, (결정문을)받아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안 소송도 진행 중이라 법률적인 검토를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직2구역이 유네스코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멸실구간이라 성곽이 보존돼 있는 곳이 아니다. (재정비 해제는) 경희궁옛터, 경희궁인접 등 여러 흔적들이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19일 기자가 찾은 사직2구역은 조용했다. 이따금 어르신이 가파른 골목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만 보였다. 동네에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소음은 우거진 나무를 정리하는 일꾼들의 기계음뿐이었다.
사직2구역의 면적은 대략 3만4260㎡ 규모다. 당초 서울시가 기획했던 건축시설계획은 건폐율 60% 이하, 용적률 177% 이하의 최고층수 12층이었다.
예전엔 190여동 가구가 살았지만 이제 절반은 공가(空家)였다. 한 집 건너 대문에는 노란색 스티커가 붙여있었다. ‘서울종로경찰서 신문로 파출소’가 새겨진 스티커에는 관리번호도 새겨져 있었다. 비어있는 집을 경찰서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걸 표시하는 숫자였다.
골목은 능선을 연상케할 만큼 가팔랐다. 길옆에는 나무 기둥이 무너진 기와집들이 사람이 살던 곳이었단 걸 잊은 듯 먼지에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장 직무대행은 조속히 동네가 재정비됐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을에 살던 분들이 좋은 환경 속에서 살려고 했던 것인데 투기라는 오해가 생겼다. 이사하는 사람들은 버티다 못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어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직2구역은 한양도성도 그렇고 문화재와는 떨어져 있는 만큼 (집을)다시 지을 것은 짓고, 문화재와 공존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