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 공룡 아마존이 헬스케어 시장까지 삼키려고 하고 있다. 제약 사업 진출을 포기한 듯 보였던 아마존이 온라인 약국 필팩을 인수하면서 제약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마존이 하와이를 제외한 미국 49개 주에서 사업을 하는 온라인 약국 필팩을 10억 달러(약 1조124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2013년 설립 당시 아틀라스벤처, CRV 등 벤처투자기업으로부터 1억18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자받은 필팩은 만성 질환용 처방약을 공급하는 데 특화한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연매출 1억 달러를 달성한 필팩은 아마존에 인수되면서 사업을 더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인수 작업은 올 하반기 내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월마트도 필팩 인수에 관심을 보였으나 아마존이 발 빨랐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아마존은 상표권과 제약 면허 모두를 확보할 의도로 필팩을 인수했다. 이로써 아마존은 기존 제약 업계가 수년에 걸쳐 쌓아온 사업 역량을 자체적으로 꾸리지 않고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아마존은 JP모건체이스, 버크셔해서웨이 등과 의료보험업체를 공동 설립하는 등 헬스케어 진출에 일찍부터 관심을 보였다. 아마존은 1999년 드럭스토어닷컴의 지분 40%를 사들이기도 했다.
이번 인수는 CVS, 월마트 등 대형 업체들이 꽉 잡고 있던 의약유통업계를 뒤흔들었다. 이날 CVS, 월그린부츠얼라이언스, 라이트에이드 등 헬스케어 관련 종목들이 뉴욕증시에서 폭락하면서 이들 3개사의 시가총액이 110억 달러 이상 증발했다.
업계는 아직 크게 우려하지는 않고 있다. 헬스케어 시장이 워낙 규제가 심해 진입 장벽이 높은 데다 데이터 시스템이 상호 연결돼있기 때문에 아마존이 업계에서 따돌림당하지 않으려면 경쟁사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밖에 없다. 스테파노 페시나 월그린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WSJ에 “견제는 해야겠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면서 “의약 업계는 약을 그저 배달하고 포장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약국의 역할은 앞으로도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투자사 레이몬드제임스앤어소시에이트는 투자자들에게 “필팩은 의약 업계에서 적은 부분을 차지했을 뿐이며 소매 점유율도 전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CVS 측 대변인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온라인으로 약을 처방받고 사려고 하기보다 오프라인 약국을 찾는다”며 아마존의 위협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마존이 지난해 홀푸드마켓과 자포스를 인수하며 신선식품과 제화 업계에도 뛰어든 데 이어 헬스케어 시장에도 깊게 침투하면서 전문적인 공급 체인망과 오프라인 매장까지 보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아마존은 4월 제약 유통 사업 계획을 유보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촘촘하지 못한 유통망이었다. 의약품은 주변 온도 등 환경에 민감하므로 정교한 물류창고 운영이 필수적이다. 아마존은 이번에 개인 사업자에게 배달 사업을 맡기는 자체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더 빠르고 더 멀리 더 구체적인 장소로 배달할 수 있게 됐다.
CVS는 아마존 쇼크에 대비하고자 미국 우정국(USPS)과 운송 계약을 맺었다. 시장 점유율에서도 밀리지 않기 위해 의료보험사 애트나를 660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제약사에서 의약품을 사들여 약국에 납품하는 도매업체들에는 유통 최강자 아마존의 등장이 더 위협적이다. 따라서 의약품 도매 체인들은 서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익스프레스스크립트는 의료보험사 시그나에 540억 달러에 인수됐고 아메리소스베르겐도 월그린과 협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