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유시장에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파기 우려가 커져 7일(현지시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70달러(약 7만5400원) 선을 돌파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파기할 것이라는 불안이 원유시장을 흔들고 있다고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란 핵협정은 2015년 7월 이란과 P5+1(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독일)이 이란 핵 문제 해결에 합의한 것을 의미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2일 이란 핵합의 이행 연장 마감일을 앞두고 미국이 요구하는 조건들이 반영된 재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위협해왔다. 이날 트럼프는 트위터에 “이란 핵합의 결정을 8일 오후 2시(한국시간 9일 오전 3시) 백악관에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면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된다. 이란이 경제 제재를 다시 받으면서 원유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트럼프는 이란의 원유 수출량을 일일 20만~30만 배럴 수준까지 줄이는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2015년 핵합의 뒤 제재를 완화한 이래로 일일 400만 배럴로 회복됐다.
이란발 원유 수급 불안 우려가 팽배해져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5%(1.01달러) 오른 배럴당 70.73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은 2014년 11월 26일 이후 3년 반 만에 처음으로 70달러 선에 안착한 동시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7월물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 대비 1.7%(1.30달러) 상승한 76.17달러를 기록했다. 이 역시 2014년 11월 말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WTI는 올해만 16% 이상 올랐고, 브렌트유는 약 13% 올랐다. 지난 한 주 동안 WTI는 2.4%, 브렌트유는 1.5% 각각 상승했다.
IHS마르키트의 빅토르 슘 애널리스트는 “원유시장은 이란 핵협정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최근 원유 가격 급등은 트럼프의 제재에 이란의 원유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가격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이란 제재를 다시 가하면 일일 1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슘 애널리스트는 2012년 이란에 대한 다국적 제재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유럽연합(EU)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핵협정을 파기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기 때문에 EU는 새로운 제재를 내놓지 않을 수 있다.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탈퇴하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며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이란에 다시 제재를 가하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일본 인도 등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란 핵협상을 실제로 뒤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ACLS글로벌의 마샬 지틀러 수석 애널리스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이나 북한과의 대화 국면을 만들 때도 그랬듯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협상 전 위협하는 스타일”이라며 “이러한 위협의 끝은 결국 정상적인 타협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