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슈퍼주총데이’ 제대로 분산하려면

입력 2018-03-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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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은 자본시장부 기자

‘539’.

이달 23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겠다고 한 상장사의 숫자다. 12월 결산 상장법인 1947곳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한날 주총을 개최한다. 흔히 말하는 ‘슈퍼주총데이’이다.

섀도보팅제도가 사라지면서 금융당국은 자발적인 주총 분산 개최를 유도하기 위해 연초부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올해도 주총이 가장 많이 몰리는 23·29·30일, 주총을 여는 상장사가 60.3%에 달한다. 특정 3일 동안 주총을 연 기업이 6.4%에 불과한 영국이나 10.3%에 그치는 미국과 확연히 대비된다.

수많은 회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주총을 열면 몸이 하나인 소액주주들은 의결권 행사 기회를 빼앗긴다. 대신 기업은 대주주의 뜻이 반영된 주총 상정 의안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이 같은 폐해를 줄여보고자 전자투표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를 신청한 회사의 숫자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30% 감소했다.

올해부터는 주총 집중 예상일에 주총을 열 때 그 사유를 공시해야 하지만, 어떠한 페널티도 없다. 의결정족수 확보에 어려움이 없는 상장사는 굳이 슈퍼주총데이를 피할 이유가 없다. 사유조차도 “대표이사의 출장 일정 때문”이라거나, “장소를 미리 대관해 놓아서 어쩔 수 없다”는 등, 분산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회사가 부지기수다.

여전히 금융당국은 주총을 대하는 기업들의 인식 전환을 기대한다. 19년째 주총 1호 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넥센타이어의 사례처럼 기업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근으로 인식을 바꿀 수 없다면 채찍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이미 대만은 하루 최대 100개 기업만 주총을 열 수 있도록 제한해 실효를 거두고 있다. 기준은 공평하게 선착순이다. 우리도 상장사의 형체 없는 너그러움에 기대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타개책을 도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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